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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임신 막으려 몰래…" 中 '불임 수돗물' 시끌

[취재파일] "임신 막으려 몰래…" 中 '불임 수돗물' 시끌

'불임(不姙)수돗물'과 '불소(弗素)수돗물'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2.05.23 20:29 수정 2012.05.25 08: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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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임신 막으려 몰래…" 中 불임 수돗물 시끌
여러분 혹시 ‘수불사업’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수돗물 불소농도조정사업’(water fluoridation)을 줄여서 부르는 ‘수불사업’은 간단히 말해서 수돗물에 함유된 불소농도를 치아우식증(충치)을 예방하기에 적절한 농도로 조정하여 주민의 건강수준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공중 보건사업입니다. 수돗물에 들어가는 불소농도는 대략 1ppm, t당 1㎖정도입니다.

이 수돗물 불소화사업은 1945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는 60여 개국에서 시행 중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1981년 ‘수불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상당수의 지자체에서 20년간 별 반대없이 진행돼 왔지만 돌연 1990년대 말 암초에 부딪히게 됩니다.

시민운동이 막 태동하던 그 시절, 적지 않은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무시돼왔던 ‘주민권’의 일환으로 수돗물 불소화 반대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민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것은 ‘불소를 먹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불소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수불화’를 지지하는 쪽은 불소화 된 지역의 주민들이 불소화 되지 않은 곳의 주민보다 충치가 40~60% 적게 발생 했다는 보고서를 들이댔고, ‘수불화’ 반대파들은 불소가 충치 예방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이런 저런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충치 예방을 위해 불소를 넣는 것이 복지시책이라면 심장병 예방을 위해서는 ‘적포도주’를 수돗물에 넣어야 하는 거냐”며 주민들의 선택권을 무시한 구태의연한 관 일변도의 시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습니다. 불소 수돗물을 그냥 먹자는 쪽은 보수, 반대하는 쪽은 진보로 몰리며 때아닌 ‘보수-진보’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각 지자체 별로 불소화 유지와 폐지를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고, 현재는 전국 5백 곳이 넘는 정수장 가운데 스무 군데 정도만이 불소 첨가를 계속하고 있을 정도로 ‘수불사업’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주민들이 민감해하는 마시는 물에 관한 문제인 만큼 지자체장들은 괜히 표라도 떨어질까 두려워 ‘수불화’를 미련 없이 포기했습니다. 집집마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돗물에 은근슬쩍 ‘정치 논리’가 끼어들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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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중국에서도 요즘 수돗물과 관련한 논란이 한창입니다. 이른바 ‘불임 수돗물’ 문제입니다. 하와이대에서 일하는 재미 중국인 환경보호전문가가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피임약 소비대국인 중국이 이제 수돗물에 에스트로겐을 넣고 있다’는 글을 올렸고 네티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중국에 ‘불임 수돗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 전문가는 중국환경과학학보라는 잡지를 인용해 중국 내 정수장 23곳을 샘플 조사한 결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중국 수돗물의 에스트로겐 함량이 월등히 높게 나타났는데,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과다 함유된 물을 장기간 마시게 되면 호르몬 교란으로 여성이 남성화되고 생식 능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피임약이 든 수돗물을 오래 먹다보면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불임’이 유발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막아보겠다며 71년부터 40년 넘게 시행해 온 1가구 1자녀 정책은 공식적으로는 곧 폐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강제적인 산아제한과 낙태, 불임시술 등을 둘러싼 인권유린 논란이 여전해 중국 정부는 예전처럼 대놓고 1가구 1자녀 정책을 밀어붙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한 달간 중국과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 사건만 봐도, 주인공 천광청은 중국 정부의 ‘계획생육(計劃生育)’, 즉 산아 제한 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이다 투옥되고 가택연금까지 겪던 끝에 탈출해 미국으로 사실상 망명을 하기에 이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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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보니 중국 정부가 부담스러운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비밀리에 피임약 성분이 든 수돗물을 주민들에게 먹여 자연스럽게 인구를 조절하려한다는 시나리오가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추측, 혹은 억측을 뒷받침할 만한 빌미를 중국 정부가 제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뉴스를 장식했던 ‘피임약 바른 오이’ 유통 사건으로 정부의 먹을거리 관리 능력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에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돗물 수질 조사 결과 은폐사건까지 보도되면서 당국의 수돗물 관리 능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지난 2009년 현급 이상 지역 4천457곳의 수돗물 처리장을 비밀리에 조사했더니 이 가운데 58.2%만이 마시는 물 기준을 통과했는데도 당국은 이를 쉬쉬하며 공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중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수돗물에 함유된 에스트로겐 양이 미미하고 아직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 없다며 ‘불임 수돗물’ 논란을 잠재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정부가 에스트로겐을 마치 ‘불소’처럼 수돗물에 의도적으로 첨가하는 일은 결코 없었으며, 혹시 에스트로겐 성분이 발견됐다면 생활쓰레기나 양식장의 오염물들에서 흘러 든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하천과 호수로 유입되는 생활 쓰레기에 섞인 환경호르몬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중국 각지에 널려 있는 내수면 양식장에서 물고기와 게, 새우를 상품성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에스트로겐이 든 피임약을 먹이는 관행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 또한 크나큰 ‘죄악’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권 의식과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날로 높아지는 중국이니 만큼 정부가 고의로 넣었건 몰상식한 양식업자들이 넣었건 ‘불임 수돗물’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인권 운동가들은 물론, 이제 ‘라오바이싱(老百姓)’으로 불리는 보통 중국 사람들도 잠자코 있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에서도 역시 집집마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돗물에 ‘인권’과 ‘삶의 질’ 이슈가 슬며시 녹아 든 겁니다.  

논란의 배경이나 사건의 본질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불소 수돗물’ 거부 운동이 중국에서 한창 불 붙은  ‘불임 수돗물’ 논란과 자꾸만 오버랩이 되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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