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부부가 이렇게 소통하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힘들다, 이건 핑계죠. 요즘 기러기 부부는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화상전화니 SNS니 소통할 수단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성이 문제일 뿐입니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500년 전 조선시대 관료가 고향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애틋합니다.
권애리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분(화장품)과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꼬. 울고 가네."
화장품과 바늘, 지금이야 흔한 물건이죠. 하지만 500년 전 조선시대에는 국내에서는 구경조차 힘들었던 중국 수입품이었습니다.
고관대작이나 쓰던 이런 귀한 걸 구해서 부인에게 선물한 사람은 500년 전 조선의 무관 나신걸입니다.
대전에 부인을 남겨 둔 채 함경도에서 근무하던 하급 무관이니까, 요즘 말로 기러기 부부였습니다.
집에 못 가서 '울고 간다'는 구절에는 그리워도 볼 수 없는 젊은 남편의 안타까움이 배어있습니다.
그래도 요즘 소위 명품 가방보다 훨씬 귀했을 분과 바늘꾸러미를 어렵게 보내서 부인에게 주는 그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라는 구절에는 서로 보지 못하고 집을 떠나 편지만 무수히 주고 받는 기러기 부부의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또 "집에 가고 싶었는데, 자기는 집에 갔다 오고 나는 못 가게 했다"는 구절에는 상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합니다.
"몰래라도 집에 다녀가고 싶지만 혹시 위에서 알게 되면 귀양 갈까봐 못 간다"는 말에선 어리광섞인 남편의 투정마저 느껴집니다.
남편인 무관 나신걸이 부인 온양댁, 맹 씨에게 보낸 편지 2통은 부인의 관속에 500년 동안 고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른들 모시고 사느라 대놓고 애정표현 한 번 못하고 그나마 맘껏 남편을 보지도 못했던 부인 맹 씨는 남편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저승까지도 갖고 가고 싶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