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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모·친척 돈 12억을…그래도 중위권"

인턴이 뭐길래? 어느 증권사의 인턴 부리기 <br> 증권사가 바라는 인재상은? 바로 '돈'

[취재파일] "부모·친척 돈 12억을…그래도 중위권"
한 증권사가 인턴사원을 모집한 뒤 정규직 채용을 명목으로 일반 직원과 똑같은 주식영업을 시킨 뒤 그 실적을 평가기준으로 삼아 논란이 됐습니다. 증권사처럼 영업을 중시하는 곳에서 실적을 따지는 게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실적을 따지는 방식입니다.

지난 해 말 해당 증권사는 60명의 인턴사원을 모집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인턴사원들은 2주간 기초적인 실무교육을 받고 영업장에 배치됐습니다. 6개월간 실무평가가 실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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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것은 실무평가의 항목입니다. 먼저 얼마나 많은 돈을 끌어오느냐? 이른바 자산 유치죠.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계좌를 텄느냐? 계좌는 10만 원 이상의 예치금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죠. 마지막으로 약정 수수료입니다. 주식 거래를 할 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거래액의 대략 1.3%의 돈이 증권사로 떨어지는데 이 금액을 누가 많이 올리느냐를 따진 거죠. 투자자들에게 절대적인 주식의 수익률은 평가에서 빠져있었습니다.

평가 항목만 따져 봐도 증권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주느냐 만을 따진 셈이죠. 평가가 시행되자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합니다. 먼저 인턴사원들한테 돈을 선뜻 맡길 사람은 없다는 점이죠. 저라도 증권사 영업장을 갔는데 인턴사원이라면서 제게 돈을 맡기시면 몇 배로 키워드리겠습니다 라고 해도 안 맡길 것 같은데요. 아니나 다를까 자산 유치를 하기위해 인턴사원들은 부모에게 손을 벌렸다고 합니다. 친척, 지인의 돈까지 끌어다 채웠습니다.

소위 아버지의 '백'을 이용해 100억 원을 한 번에 유치한 인턴사원도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인턴사원은 부모와 친척들에게 손을 벌려 12억 원을 끌어왔지만 자산 유치 순위는 동기들 가운데 중위권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취업난에 물불 가리지 않는 유치 경쟁이 펼쳐진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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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약정 수수료 입니다. 그야말로 증권사의 순이익이 되는 셈인데 인턴사원들은 부모나 친척에게 받은 돈, 그리고 자신이 모아 놓았던 돈을 주식 거래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하락 장세에 주식으로 수익을 내긴 전문가들도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주식에 대한 기초업무만 배운 인턴사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손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수수료를 높이기 위해 이른바 '묻지마' 식으로 주식을 사고팔았다고 합니다. 결국 증권사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는 올려놨지만 자신은 적게는 1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투자손실을 떠안게 됐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묻지마식 거래를 할 수밖에 없을까요? 다름아니라 인턴사원들의 수수료 실적은 실시간으로 증권사 내부망에 공개가 됐습니다. 증권사들은 실적에 순위를 매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수십 명밖에 안 되는 인턴사원은 누가 지금 얼마의 수수료를 올리는 지 뻔히 볼 수 가 있습니다. 자신은 죽어도 무리한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다른 동기들이 올리는 수수료가 쭉쭉 올라는 걸 보면 자기도 모르게 거래버튼에 손이 간다고 합니다.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이 미웠다고 고백합니다.

인턴사원은 증권사가 적은 돈을 주고 자신들을 사실상 돈벌이 수단으로 써 먹었다고 주장합니다. 130만 원 정도의 급여를 줬으니 6개월을 다 합쳐도 회사 비용은 1억 원 정도지만, 인턴사원들이 안긴 수수료 수익은 최소 5억원은 될 거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값싼 인건비로 남는 장사를 한 거라는 거죠.

증권사는 이 점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합니다. 인턴사원들에게 친인척의 돈을 끌어오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그 돈으로 투자하는 이른바 자기매매도 금지했다고 하죠. 심지어 채용 과정에서 자기 매매와 같은 행위는 모두 걸러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리한 주식거래와 자산 유치와 같은 행동은 인턴사원들 스스로 과열 경쟁이 부추겨서 만든 부작용이라고 말합니다. 인턴사원들이 모아온 자산은 사실상 채권이 대부분이라 직접 주식으로 투자된 금액은 적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인턴사원들이 올린 수수료 역시 다 합쳐봤자 부장급 사원한 명이 올린 수수료보다 적다면서 인턴사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반박합니다.

그리고, 채용 평가의 기준은 실적뿐 아니라 인성과 과제, 면접 등 다양하게 진행했다고 합니다. 사전에 인턴사원들에게 실적이 절대적인 수치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실적이 나쁘지만 인성과 과제수행이 뛰어나 뽑힌 사원도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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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60명의 인턴사원은 많은 비애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결국 20명 정도가 중간에 포기하게 됐고 남은 40명 가운데서 정규직에 채용된 건 16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40여명은 그야말로 이력서에 한  줄 들어가는 경력난을 채우기 위해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투자손실만 그저 빚처럼 떠안게 된 셈이죠.

인턴사원은 처음 영업부서에서 사전교육을 할 때 50%가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이라고 들었다고 합니다. 증권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인턴사원들의 상상에서 나온 50% 채용일까요?

SBS가 취재에 들어가자 증권사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앞으로는 채용 평가제도에 실적을 집어넣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최악의 취업난속에 여의도 증권가 입성을 꿈꾼 인턴사원에겐 투자손실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증권사는 그들이 올린 수수료 수익만 챙겼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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