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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급발진 조사 착수…'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취재파일] 급발진 조사 착수…'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도로 위에 정차중인 차가 갑자기 움직인다. 시속 130km로 달리더니 차 7대와 충돌했다. 이 장면이 블랙박스 동영상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누가 봐도 이건 ‘급발진’이다. 그렇지만 자동차 회사나 당국 입장에서 보면 아직은 급발진 ‘추정’ 사고일 뿐이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교통부는 '급발진 사고'를 이렇게 정의한다. 차량이 완전하게 정지한 상태 또는 매우 낮은 출발 속도로부터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높은 출력에 의해 급가속 되는 것. 설명은 딱 부러지고 쉬운데 그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답답해진다. 운전자는 차 때문에, 자동차 회사는 우리 잘못은 아니다 라고 맞서기 때문이다.

팽팽할 것 같던 양측의 대결에서 운전자가 이겨본 적은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급발진을 조사했더니 운전자의 페달 조작 실수로 판명난 게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도 1999년 25건의 급발진 추정 사례를 정밀 조사했지만 똑같은 결과를 얻었을 뿐이다. 소수의 케이스에서 데이터 부족으로 원인 규명 불가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동차 결함으로 결론 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즉, 운전자 잘못이거나 잘 모르겠다는 있어도 자동차 회사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급발진을 당한 사람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정부가 13년 만에 또 급발진에 대해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정부는 이번 조사에서 13년 전에는 없었던 ‘EDR’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Event Data Recorder의 약어로 사고기록장치 쯤으로 번역하면 맞을 것 같다. EDR은 에어백과 연결된 전자제어장치인 ACU(Airbag Control Unit)에 들어있는 저장 프로그램이다. 일정 속도 이상에서 충돌사고가 나면 에어백이 터지고 그때 상황을 EDR에 기록하는 것이다. 주행속도, 브레이크 페달 조작 여부 등이 기록되기 때문에 비행기의 블랙박스랑 비슷한 역할을 한다.

EDR 조사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다. 2009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렉서스를 몰고 가던 일가족 4명이 급발진 추정 사고로 숨지자 미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그때 EDR을 조사했다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조사 결과 자동차의 전자적 결함은 없었다고 나왔지만 조사의 정확성이나 신뢰도를 높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미국은 올 9월부터 미국내 판매 승용차에는 EDR 장착을 의무화했다. 미 정부는 여기에 15개의 운행 정보를 사고 5초 전부터 기록하라고 규정했다. 15가지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누적 속도 2. 최대 누적 속도 3. 최대 누적 속도까지 도달 기간 4. 차량 속도 5. 엔진 스로틀 (가속 페달) 6. 제동 페달 작동 여부 7. 충돌 시점까지 시동 횟수 8. Data 다운로드 시점까지 시동 횟수 9. 운전석 시트 벨트 착용 여부 10. 에어백 경고등 점등 여부 11. 운전석 정면 에어백 전개 시간 12. 동승석 정면 에어백 전개 시간 13. 사고 횟수 14. 첫번째에서 두번째 사고까지 소요 시간 15. Data 기록 완료 여부..이 자료만 보면 사고 직전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EDR 조사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급발진이라는 게 자동차에 센서와 컴퓨터가 장착된 이후부터 발생했는데 지금은 차 한 대에 대략 30% 가까이 전자장비가 들어간다는 것. 박 명장의 주장에 따르면 급발진이 배기량이 큰 차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배기량이 클수록 전자장비가 많이 들어간 고급차이고, 큰 차에서 급발진이 많다면 전자장비의 영향이란 상관관계가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EDR에 담긴 정보가 중요하긴 하지만 전자부품 전체를 살펴보지 않으면 근본 원인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ECU라는 자동차 전자제어장치간 충돌이나 외부 주파수에 대한 민감한 반응, 전자파 등 전자장비의 오작동을 유발할 요인을 전면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발진 조사의 명쾌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운전석 하단의 페달 부분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주장도 있다. 지금도 차량 앞뒤를 촬영하는 블랙박스가 사고 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듯이 운전자의 발을 계속 촬영하고 있으면 급발진때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가속페달을 밟았는지 쉽게 확인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끝으로 조사 방법과 상관없이 소비자 중심의 정보 공개도 필요하다. 정부측 설명에 따르면 국내에선 에어백이 달렸고 최근 출시된 차량엔 EDR이 대개 부착돼 있다고 한다. 모호한 설명이다. 자동차 회사는 더 하다. 어떤 차종에 부착했는지 공개해 달라는 요청에 정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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