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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절모 쓴 김정은…'눈'에 보이는 성과 노리나?

[취재파일] 중절모 쓴 김정은…'눈'에 보이는 성과 노리나?
북한 김정은 제1비서의 8일(보도날짜가 9일이므로 8일 방문으로 추정됨) 만경대유희장 현지지도는 여느 현지지도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현지상황을 보고 받고 일반적인 지시를 내리던 기존의 현지지도와는 달리 당 간부들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비서는 ‘유희장 구내도로가 심히 깨어진 것을 보’고 ‘도로관리를 잘하지 않아 한심하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유희장 곳곳의 관리부실을 지적하면서 ‘일꾼들과 관리성원들의 인민에 대한 복무정신이 영(0)이 아니라 그 이하’라며 이는 ‘실무적인 문제이기 전에 사상관점에 대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김 비서는 직접 보도블럭 사이에 난 잡풀을 뽑기까지 했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강한 어조로 질책을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향후 숙청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김정은 비서가 뭔가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 비서의 질책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 비서는 현지지도 과정에서 ‘일꾼들 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관점을 들어내는 계기, 낡은 일본새(일하는 태도)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로 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에 빠져있는 간부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불철주야 애쓰는 최고지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무능한 간부들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강성국가 건설을 공언해 온 2012년, 그 가운데 가장 큰 축제인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 행사가 끝나고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절모 쓰고 상의 옷단추 푼 김정은

하지만, 김정은 제1비서의 이번 현지지도를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분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먼저 김정은의 외형적인 모습이다. 김정은 비서는 이번 현지지도를 나서면서 중절모를 착용했다. 조선중앙TV에 나온 김 비서의 모습을 보면, 김 비서는 중절모를 쓰고 중간에 상의의 옷단추를 푸는가 하면 시멘트 구조물에 걸터앉는 등 외견상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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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가 만경대유희장을 찾은 8일 무렵 평양의 낮 최고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갔다 하니, 뜨거운 햇볕 때문에 중절모를 쓰고 상의의 옷단추를 풀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TV 화면에 비춘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단순히 날씨 문제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절모를 즐겨 쓰고 보다 편한 모습으로 인민들에게 다가갔던 지도자의 모습,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 김일성의 모습이다. 당 간부들을 질책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최고지도자가 직접 허리를 굽혀 보도블럭 사이의 풀을 뽑는 모습 또한 인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자상한 지도자의 모습을 염두에 둔 고도의 연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손을 고정시킨 채 다른 손으로 박수를 치는 모습에서부터, 공개장소에서 다시 시작한 대중연설, 중절모를 착용한 현지지도까지 김정은을 김일성의 이미지와 일체화시키려는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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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유희장 관리부실’ 질타한 맥락은?

다음으로 이번 현지지도에서 주목해 볼 부분은 김 비서의 만경대유희장 관리부실 질타가 나온 맥락이다.

북한은 5월 들어 ‘국토관리총동원 열성자대회’를 사상 처음으로 개최하는 등 국토관리 운동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비서는 ‘국토관리총동원 열성자대회’를 처음으로 마련했을 뿐 아니라 대회 명칭까지 직접 명명했다고 한다.

김 비서는 또, 열성자대회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참가자들과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었으며, 두 번째 노작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 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에서도 국토관리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했다. 5월 중순 들어서는 각 부문 일꾼들이 김 비서가 제기한 ‘국토관리 운동’에 매진하는 모습들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연이어 방송되고 있다. 김 비서가 국토관리 사업에 쏟는 열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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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관리 사업은 사실 김 비서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아니다. 조선중앙TV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국토관리 사업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부터 비롯된 사업이었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특히 1996년 8월 ‘국토관리 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노작을 발표하며 국토관리총동원 운동을 발기하기도 했다. 김 비서가 열성자대회 참가자들과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사진을 찍은 것도 이 사업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을 받드는 사업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국토관리총동원 운동’은 왜 다시 부각되고 있나?

그렇다면, 김정은 비서가 ‘국토관리총동원’ 운동을 대대적으로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중앙TV가 보도한 김인식 내각 부총리의 보고에 의하면, 국토관리 사업은 ‘도시와 농촌건설로부터 시작해 토지정리, 치산치수 같은 자연개조사업, 산림, 도로, 강하천, 연안, 영해와 지하자원, 수산자원, 유용동식물 자원 등 자연보호와 환경보호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전 영토를 보호관리하는 거창한 사업’이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의 전 국토를 최상의 조건으로 보기좋게 가꾸겠다는 것인데, 국토개발 사업의 특성상 일이 진행되는 만큼 사업성과는 눈에 바로바로 드러나게 된다. 상당수의 지도자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건설사업에 치중해 온 것처럼 김정은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김정은 비서의 입장에서는 김일성 100회 생일 행사가 끝나고 공식적인 권력승계 절차도 마무리된 지금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줄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최고지도자의 능력을 대동강 불꽃놀이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 성과로서 주민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토관리 총동원 운동은 이러한 측면에서 고안된 사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비서가 자신의 업적을 선전할 도구로 ‘눈’에 드러나는 국토관리 사업을 꺼내들었다는 것은 북한이 향후 근본적이고 체질적인 개혁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근본원인을 찾아내 본질적인 부분에 메스를 가하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피적인 부분에 정력을 쏟는 식이라면, 북한 경제의 개선은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도블럭 사이의 잡풀을 뽑고 깨진 도로의 부실을 질타하는 리더십으로 단기적인 주목을 끌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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