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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주영의 '언론 기피증', 결국 '파국'으로…

[취재파일] 박주영의 '언론 기피증', 결국 '파국'으로…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이 필요했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이라는 축구 전쟁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의 화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최강희 감독은 수비와 미드필드진은 선수들이 충분한데 측면과 중앙 공격을 책임질 파괴력 있는 선수가 부족해 걱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K리그에서 활약하는 용병 에닝요와 라돈치치의 귀화 추진도 그래서 이뤄진 것이죠. 비록 소속팀 아스널에서는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해 경기력 저하가 염려됐어도 대표팀에서 만큼은 좋은 활약을 보여준 박주영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겠죠. 박주영의 강점은 큰 경기 경험이 많은데다 큰 경기에서 강했고, 특히 우리가 최종예선에서 맞닥뜨려야할 중동팀을 상대로 유독 강한 모습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한 방이 있는 선수죠.

그래서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을 선발하기 위한 절차로 그가 병역 기피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할 것을 공개적으로 권고했습니다. "박주영! 너가 필요한데 뽑자니 국민여론이 부담이다. 따라서 너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여론을 누그러뜨려달라. 그리고 태극마크를 향한 강한 의지를 표현해달라"는 뜻이었죠. 하지만 이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났습니다. 축구협회가 기자회견을 주선하기 위해 박주영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박주영은 연락불통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을 뽑지 않았습니다. 아니 뽑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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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의 성격과 평소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감안하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주영의 언론 기피증은 유명합니다. 특히 자신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슈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언론들을 외면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을 넣었을 때, 지난해 AS모나코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을 모색할 때, 그리고 지난 2월 경기력 저하 논란 속에 최강희호에 승선했을 때.. 기자들은 박주영을 인터뷰하기 위해 공항에서,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매번 허탕을 치기 일쑤였습니다. 검찰 출입기자들이 자주 하는 일명 '뻗치기'를 스포츠 기자에게까지 전파했죠. 그래도 그렇게까지 시간과 발품을 팔아서 박주영으로부터 한 마디라도 들어보고자 하는 이유는 그가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9월 아스널 이적이 공식 발표된 이후 축구협회의 주선으로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어렵게 이뤄진 인터뷰 자리에서 한 기자가 박주영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박주영 선수는 앞으로도 계속 언론과 인터뷰를 피할 생각입니까?" 박주영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대표팀과 관련된 질문에는 답하겠지만 개인적인 질문에는 앞으로도 답변을 안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대표팀과 관련된 질문'이고 무엇이 '개인적인 질문'인지.. 스포츠 기자들이 박주영에게 궁금한 것은 뭐 시시콜콜한 신변잡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축구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 박주영 선수는 '이적설'이나 '현재 몸상태', '부상 정도', '팀 동료들과 어떻게 지내고 얼마만큼 적응했는지' 등등을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축구 선수 박주영과 관련된 것이고 팬들이 궁금해하는 사항들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지기 라도 하면 십중팔구는 인터뷰를 거절하는데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부의세계가 결코 매번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인데 패배의 아픔을 인내하는 법도 터득해야 할 텐데..

이런 질문도 기피하고, 답변하더라도 퉁명스럽게 하는 박주영에게 '병역 기피 논란'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메가톤급 주제였을 것입니다. 불 보듯 뻔히 예상되는 기자들의 송곳같은 질문 세례를 박주영의 성격상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고 답변 과정에서 오히려 역효과와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두려웠을 수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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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저는 박주영의 '병역 연기'가 그의 국가대표팀 승선을 가로막을 만한 결격 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국민 정서에는 맞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불법은 아니었고, 모나코 장기 체류허가가 어찌됐던 그가 갖고 있는 축구 재능을 통해 합법적으로 획득한 것이었고, 앞으로 축구를 통해 국가에 기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주영이 그동안의 언론기피증을 과감히 떨쳐내고 이번 기회에 당당히 그리고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병역을 연기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리를 갖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이제 '병역 논란'을 극복하고 앞으로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은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길 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것도 국민 여론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아주 어마어마한 활약을 말입니다. 시즌이 끝나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박주영의 거취가 또다시 뜨거운 관심이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박주영의 언론 기피증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고 언론과 숨바꼭질이 전개될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박주영이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인터뷰했을 때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네요. 바로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우리나라를 사상 첫 원정 16강에 올려놓은 프리킥 골을 넣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주영은 정말 친절하고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친절한 주영씨'였죠. 월드컵에서 골, 그것도 천금같은 골을 넣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박주영의 그런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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