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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파일러가 바라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이들은 정말 평범했을까

[취재파일] 프로파일러가 바라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철지난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이야기를 또 꺼내들어야겠습니다. 사건이 발생한지도 보름이 넘었고, 이제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단순한 10대 남녀 3명의 계획 살인이 아니라, 그간 속병을 앓았던 우리 청소년들의 자화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까닭입니다.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지난 주 경찰의 심리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전문 프로파일러가 이들 청소년을 면담했습니다. 5시간 정도 면담이 이뤄졌고, 어느 정도 이번 사건의 원인이 파악됐습니다. 이들을 면담한 프로파일러와의 인터뷰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해 봤습니다.

평범함. 이들은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이 부유했고, 성적도 중위권이었고, 꽤 조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평범한 이들이 저지른 믿기 어려운 참극. 자연히 사람들은 배후를 찾기 시작했고, ‘사령 카페’는 정황상 아귀가 맞아 떨어진 팩트였습니다. 하지만 전문 프로파일러는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이들이 공통적으로 어릴 적부터 학대와 왕따에 시달렸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가정과 학교가 전부인데, 이곳에서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프로파일러는 이런 공통 분모가 이번 참극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 결국 이들이 찾은 탈출구는 인터넷이었습니다. 현실에선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인터넷은 달랐습니다. 익명의 공간 속에서 이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없었던 친구도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프로파일러는 이들이 인터넷에서 활동한 댓글을 보면 다소 과장된 문법이 많았는데, 현실에서 소외된 이 청소년들이 느낄 수 있었던 일종의 해방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사령카페에서 ‘내가 마녀다.’라는 식의 댓글을 달았던 것도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겁니다.

대인관계. 현실 속에서는 움츠릴 수밖에 없었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일종의 해방감을 맛봤던 이들. 하지만 대인관계 능력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항상 위축돼 있었던 오프라인 공간, 그리고 지극히 활발했던 온라인 공간의 간극 속에서 이들은 실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게 프로파일러의 분석입니다. 가령, 이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거나 문자에 대한 답이 오지 않으면 무척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이들의 문자를 보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욕설을 주고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보통 전화를 안 받으면 다시 거는 게 일반적인데, 이들은 이런 부분에서조차 큰 소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인터넷 공간은 이미 왕따나 학대 등으로 곪을 대로 곪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활동한 탈출구였는데, 여기서조차 소외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두려움과 공격적인 성향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입니다.

여기까지는 인터넷 의존도가 높은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어떻게 잔혹한 살인으로 이어졌느냐는 겁니다. 누구나 소외를 느끼고, 인터넷을 해방구로 인식하고, 여기서조차 무시를 당하면 위기의식을 느끼고, 때론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왜 이들은 살인이라는 선택을 했을까요.

개인차. 앞서 설명했듯 이들은 평소에도 극한의 소외감을 느꼈는데, 유달리 이런 감정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개인 차이인데,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그냥 고민하고 넘겼을 사안을 이 아이들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극한의 소외감은 극단의 공격성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데, 이 과정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대학생을 무자비하게 살해했습니다. 어떻게 살해했는지는 다른 언론 보도에 적나라하게(?) 잘 묘사가 돼 있으니 내용은 삼가겠습니다.

전쟁 포로. 프로파일러는 소외감과 공격성이 연결되는 과정을 ‘전쟁 포로’와의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의 상황에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던 군인들은 전쟁 포로를 보면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죽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무참하게 포로를 살해하고, 양민을 학살하는 식의 전쟁 범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들의 행태와 유사하다는 설명입니다. 프로파일러는 이들의 현실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합니다. 항상 소외돼 있고, 그렇기에 두려웠고, 그래서 무서웠고, 또 그래서 그 분노가 살해의 순간 폭발했다는 분석입니다. 더구나 이 아이들은 워낙 평소에 피해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그만큼 공격성이 확대될 여지도 컸습니다. 그렇기에 과도하게 살인 행위를 하는 ‘오버킬’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VIM. 뇌의 기능 가운데 폭력성 억제할 수 있는 기제를 VIM(violence inhibition mechanism)이라고 하는데, 전쟁포로를 대하는 군인의 경우 이런 VIM가 거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 청소년도 극도의 소외감과 공포감으로 VIM이 거의 유명무실해졌다는 게 프로파일러의 분석입니다. VIM이란 말은 사이코패스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알려졌는데, 사이코패스가 선천적으로 VIM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들은 후천적인 영향으로 VIM에 손상이 가해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달리 소외감을 느꼈던 개인적 특성, 현실을 전쟁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공포감, 이로 인한 VIM 손상까지, 다양한 이유가 함께 작용을 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오해 2가지를 정리해 봤습니다.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다양한 말들이 나왔는데 프로파일러는 지금까지 제기됐던 수많은 지적들이 사건의 본질과는 무척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사령 카페. 일단 프로파일러는 사령 카페는 이번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악령이나 사령 등의 명령에 의한 살인 방식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사령에 대한 믿음이 깊어 벌어진 살인사건은 치밀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사령이 다 보살펴 주실 거란 식의 믿음 때문에, 살인 이후에 뉴스를 검색한다던지 CCTV를 의식하는 식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겐 살인은 ‘판타지’에 가깝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청소년은 역할을 분담해 계획을 했고, 살인 이후에는 사체를 은폐시키기도 했으며, 지속적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사령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면 결코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거란 게 프로파일러의 분석입니다.

중간고사. 살인 다음날, 이들이 태연히 중간고사를 봤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자연히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는 증거로 알려졌지만, 프로파일러는 이는 오히려 어수룩한 살인범의 일반적인 행태라고 말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탓에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대로 행동하려 한 것이고,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 등의 감정은 경황 상 논할 시기가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일단 구치소에 들어가 생각의 시간을 가질 때 극도의 반성의 감정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프로파일러는 이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소통이 꽤 잘됐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잘 털어놨고, 오히려 먼저 이야기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통에 굶주려 있었다는 겁니다. 만일 이들 주변에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혹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사람 죽이는 건 너무한 것 아닐까.”라고 말만 했다면, 이런 참극은 없었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이들은 중심을 잡아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프로파일러와의 대화 마지막 부분을 결론으로 갈음합니다. “어쨌든 이제부터입니다. 아직 이 아이들은 살날이 더 남았습니다. 형량을 채우고 나와 또 범죄자가 될지, 아니면 보탬이 될지는 우리 어른들의 몫입니다.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식의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길러낼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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