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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년실업의 그늘…학자금 대출 연체자 급증

[취재파일] 청년실업의 그늘…학자금 대출 연체자 급증
 "미셸과 나도 얼마 전까지 학자금 대출 상환을 해야 했다. 학자금 대출 저리 이자 시한이 끝나가는데 미 의회에서 연장을 안 해 주면 여러분 부담은 커진다. 의원들에게 편지라도 보내시라."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대학을 방문해 한 연설입니다.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낮춰주는 법의 시한이 만료돼 연장을 하지 않으면 이자가 2배 정도 늘어나는 상황을 대학생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우리가 학자금 대출 제도를 벤치마킹한 미국도 이렇게 경기가 어려워 청년들 취업이 어려워 질수록, 또 대학 등록금이 치솟을수록 학자금 대출은 정치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학자금 대출로 인한 사회 문제, 특히 청년층의 이중고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학자금 대출의 취지는 좋습니다.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니는 일이 없도록 금융회사와 한국장학재단에서 등록금을 빌려주는 겁니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금융회사에서 빌리는 일반학자금 대출은 대출을 받은 다음 달부터 매달 이자만 내다가 자신과 은행이 합의한 원금 상환 기간(보통 5년)이 되면 원금도 분할 상환하기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빌려주는 취업 후 상환 조건 학자금대출(든든학자금 대출)은 연 소득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을 경우 원리금 상환을 하지 않다가 그 수준을 넘어서면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대출은 한국장학재단이 하고 상환은 국세청에서 담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취지의 학자금 대출이 청년 실업과 맞물리면서 청년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한국장학재단 통계를 보면 2008년 이후 매년 1만 명 정도씩 증가하던 학자금 대출 연체자가 지난해에는 4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일반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이 약속한 원리금 상환 기간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취업은 이뤄지지 않다 보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청년 신용불량자도 100명 당 2.4명 꼴인 3만 300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공식 통계에서만 이 정도인데 이 돈을 갚기 위해 제2금융권, 사채 시장까지 몰려서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그 돈을 갚으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성적 관리를 못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악순환도 생기고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은 대부분 형편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비, 집세, 책 값, 이자를 내려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흥청망청 낭비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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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시행된 취업 후 상환 조건 학자금 대출은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생들이 취업을 못한다는 같은 문제에서 생기는 건데 연 소득 768만 원을 넘으면 자동적으로 원리금 상환이 이뤄지고, 돈을 못 내면 복리이자가 적용되는 조건 때문입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이 취업은 안 되는데 눈앞에 닥친 생활고는 해결해야 하니까 휴학을 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조건으로 인해 그 순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지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정상적인 봉급생활자로 취직이 되면 매달 일정액이 원천 징수되기 때문에 그나마 나을 수 있지만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 방문판매원 등으로 취업하면 1년 마다 한꺼번에 본인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가 원리금 상환으로 청구됩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학자금 대출자도 졸업 직전 휴학을 하고 보습학원에서 일했는데 500만 원 대출을 받은 취업 후 상환 조건 학자금 대출 때문에 360만 원을 2주 안에 내라는 통보를 받게 됐습니다. 본인 처지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금액이고 안 낼 경우 연체에 복리 이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걱정에 밤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학자금 대출을 4000만 원 정도 받았다면 20년 후 갚아야 할 원리금은 1억 원이 넘습니다. 올해는 이자가 그나마 조금 낮아졌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요즘 젊은 층에서는 결혼 전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풍속도까지 생겼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소득을 일부러 숨기거나 정식 취업이 될 때까지는 일부러 임시직은 피하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도 못한 청년들이 암담한 현실을 먼저 느끼며 꿈을 펴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사실 학자금 대출을 먼저 시행하고 있는 미국도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5.4%인 3700만 명이 8700억 달러의 학자금 대출 빚을 지고 있습니다. 특히 39세 미만이 빚의 65% 이상을 가지고 있고, 연체금액의 6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등록금이 치솟는 추세여서 이 비중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학자금 대출 문제를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OECD 국가 가운데 고등교육 이수자가 63%로 가장 높을 정도로 누구나 대학을 가려 하는 점이 문제라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면 소득이 생길 때 즉시 상환시킬 수 있어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학자금 대출 재정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청년 층이 학자금 대출로 인한 덫에 빠져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소비 계층이 줄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한국장학재단이 적자냐 흑자냐, 상환을 잘하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연체 이자율을 낮춰주고,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우선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가 활력을 갖고 성장을 거듭하면서 청년 실업률이 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해결책일 겁니다. 괜찮은 직장에 취직만 한다면 상환에는 문제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청년 실업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현실이고 우리 경제의 향후 여건이 저성장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대책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층이 절망하는 사회의 미래가 결코 밝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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