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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비가 오지 않는 이유

[취재파일] 제비가 오지 않는 이유
권선징악을 주제로한 흥부전 탓에 제비는 우리 민족에게 복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반갑고 친근한 새가 된지 오랩니다. 누구 할 것없이 우리는 춘삼월이 오기전부터 초가지붕 처마밑에 둥지를 틀러 찾아올 제비부부를 겨우내 기다렸습니다. 제비집 아래 마당과 심지어 방문앞 마루까지 함부로 깔린 흰똥을 뒤집어써도 불평하는 사람없이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놀러간 제비가족이 돌아왔는지 빈 둥지를 살피곤 했습니다. 제비가 둥지로 돌아와야 마음 편하게 잠자리에 들 정도였습니다. 새끼를 까고 둥지를 떠날때 쯤이면 내년에도 꼭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제비는 이렇듯 한 식구 였습니다.

유달리 제비에게 극진한 대접을 한것은 밥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쳐주고 벼락부자가된 소설속 흥부를 꿈꾸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때는 음력3월3일 삼짇날입니다. 이 무렵이면 날씨가 따뜻하고 꽃이 피어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믿었습니다. 집집마다 겨우내 잘띄운 메주로 장을 담그고 화전과 쑥떡을 해먹으며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작은 명절이기도 했습니다.

봄을 물고온 제비는 둥지를 짓고 알을낳고 새끼를 부화해 여름을 납니다.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따뜻한 동남아시아로 돌아갑니다. 수소문끝에 제비가 왔다는 충북 보은의 한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마을을 중심으로 들녘이있는 여느 농촌마을과 별반 다를게 없는 농촌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 20여가구 중 유일하게 한 집에만 제비 한쌍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부리로 쉴새없이 진흙을 물어날라 벽에 붙이는 집짓기는 꼬박 일주일 가량 걸린다고 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다른집 다 놔두고 어째서 자기집에 들어왔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귀한손님이 반갑다는 표정이었습니다. 30여년전만해도 이 마을엔 집집마다 제비집 둥지가 가득 달렸고 아침나절 동네 전깃줄 위엔 새까맣게 제비가 올라앉아 지저대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흔하던 제비가 알게모르게 줄어들더니 이제는 겨우 한쌍밖에 오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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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의 한 면소재지에서는 제비 10여 마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것은 농가주택이 아닌 개량된 상가건물에 둥지를 틀었다는 점입니다. 제비들은 슈퍼마켓,미용실,세탁소,식당 같은 콘크리트 슬래브건물에 기술좋게 집을 짓고 있습니다. 처마나 추녀같은 공간이 없다보니 대부분 비가림용 천막들 위에 흙을 쌓아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마을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묘목생산 고장입니다. 봄철이면 논과 밭을 갈아 제비집의 주 재료인 진흙 또한 풍성한 곳입니다.

전문가들은 제비 서식지 조건으로 둥지를 짓는데 필요한 진흙과 오염이 덜된 농경지를 우선 꼽았습니다.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벼농사 대신 소득이 좋은 시설하우스 채소 농사를 선호하다보니 갈수록 벼를 심는 논이 사라지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들녘마다 거대한 비닐하우스단지가 들어서서 논흙 구경도 그 만큼 힘들어졌습니다. 또하나 생산량 증대를 위해 온갖 제초제와 살충제를 마구 뿌려 땅을 망쳐놓은 것도 제비 개체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오염된 토양에서 먹이활동을 하면 알을 낳지 못하거나 산란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대화 산업화의 이름아래 진행된 거대한 경제개발의 물결이 제비 서식지를 빼앗은 셈입니다.

결국 제비를 쫓아낸 조건이 우리에게 있듯이 제비를 돌아오게할 조건 역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강남갔던 제비가 다시 떼지어 돌아올날, 우리 삶의 행복지수도 그만큼 올라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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