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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랑스 대선 읽기 2

[취재파일] 프랑스 대선 읽기 2
길었던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대장정이 끝났습니다. 1차 투표가 끝나고 2주 뒤에 결선투표를 치르다 보니, 프랑스의 모든 뉴스 매체들은 거의 한 달 내내 대선 얘기만 하더군요. 1차 투표를 지켜보며 이번 대선의 특징적인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요, 결선투표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점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결선투표에서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투표율입니다. 80.34%로 1차 투표의 79.47% 보다 더 높았습니다. 물론 2007년 결선투표의 83.97% 보다는 낮았지만, 우리 기준으로는 거의 천문학적인 수치일 것입니다. 1차 투표가 부활절 바캉스 한 가운데에 끼어있는 일요일이었는데, 결선투표도 비슷했습니다.

프랑스는 5월 8일이 2차 대전 승전기념일로 공휴일인데, 올해는 화요일이기 때문에 월요일은 징검다리 휴일이었습니다(프랑스 사람들도 ‘다리’를 뜻하는 pont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래서 5월 5일부터 5월 8일까지 나흘 동안 연휴인 셈이죠. 결선투표일인 6일이 이 연휴 한 가운데 끼어있었는데도 80%가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 더 놀라웠던 것입니다. 실제로 6일 오후부터는 투표를 마친 뒤 집을 나선 사람들로 파리 시내나 주변 고속도로들이 북새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투표율이 높을 수 있을까요? 사실 아무도 그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추정해 본다면 역사적으로 형성돼온 주인 의식과 정치 참여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1789년 대혁명을 통해 왕가 일족을 단두대로 보냈고, 이후 공화정과 왕정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프랑스 일반 국민들에게도 국가 체제에 대한 주인의식이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또 공화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도체제가 명확해야 했고 그러려면 정치적 입장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자신의 정치노선을 명확히 하는 것도 역사적인 전통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지칭되고 있는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자코뱅파와 지롱드파의 노선 다툼에서 비롯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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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말고도 또 한 가지 인상적인 프랑스 선거의 핵심은 결선투표 제도입니다. 여러 명의 후보들을 놓고 1차 투표를 벌인 뒤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벌이게 되는데, 여기서 핵심은 과반수 확보에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면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유권자 입장에서는 최선의 후보가 아니라도 차선을 선택해서 과반수 지도자를 뽑자는 것인데, 전제는 일단 뽑힌 지도자에 대해서는 대표성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5년 뒤 다시 심판을 하면 되는 것이고요. 두 번 대선을 치러야 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국가 지도자 선출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원내각제 국가들이 채택하는 연립정부도 결국 핵심은 과반입니다.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통해 연정을 구성했는데, 어떻게든 과반을 확보해야 국민을 대표할 수 있다는 서구 민주주의의 전통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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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가정의 개념 정의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르코지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여러 가지 잡음은 있었더라도(미테랑 대통령이 숨겨놓은 연인과 딸로 가장 유명했고, 다른 대통령들도 그에 못지 않았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가정생활은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사르코지 대통령에 와서 이혼과 재혼, 또 이혼이 그다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결혼 스토리는 우리 기준으로는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입니다.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킨 대부의 딸과 결혼한 뒤 장인으로부터 시장직을 물려받아 놓고는, 시장으로서 자신이 주례를 섰던 결혼식에서 신부에게 반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두 딸을 낳고 살던 세실리아를 오랜 구애 끝에 이혼시키고 나서, 자신도 이혼한 뒤 새로운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도 각각 따로따로 새로운 연인이 생겨 별거생활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다시 재결합해 정상적인 가정을 과시했던 것입니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세실리아와 이혼하고, 지금의 카를라 부르니와 세 번째 결혼을 했던 것이 가장 최근의 스토리죠.

그런데 올랑드 당선자의 특징은 아예 한 번도 결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007년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사르코지에게 패했던 세골렌 롸이얄과 함께 살면서 4명의 아이를 가졌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연인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 역시 결혼하지 않은 동거녀일 뿐입니다. 프랑스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대통령과, 동거녀 자격의 영부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전형적인 68세대인 올랑드 사회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당대의 우상이었던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이상적 관계가 이제 프랑스 사회의 일반적인 관계로 자리잡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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