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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쿨존만이라도 보행신호를 3∼5초만 늦춰보자!

[취재파일] 스쿨존만이라도 보행신호를 3∼5초만 늦춰보자!
아이들이 학교가 끝날 시간에 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초등학교 앞을 가봤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이 학교가 끝나자 한번에 우르르 몰려 나왔습니다. 학교가 끝난게 그리도 신이 났을까요? 걷는 아이 절발, 뛰는 아이 절반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들은 "뛰지마. 다쳐!" 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제가 간 초등학교 중 한 곳은 학교 정문을 나와 내리막길을 100m정도 내려가면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4차선 도로에 있는 횡단보도앞에 멈춰섰습니다. 정문부터 뛰던 아이들. 횡단보도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신호등만 쳐다 보다가 녹색불이 들어오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뛰어 나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제 횡단보도를 막 건너기 시작했는데 이미 길을 다 건너 신나게 뛰어 다니는 개구쟁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횡단보도가 있는 왕복 4차선도로는 '어린이보호구역'. 즉 '스쿨존'입니다. 도로 바닥에는 제한속도를 나타내는 '30'이라는 숫자가 크게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 멀리서 부터 신나게 달리던 차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대부분 50km/h를 넘겼습니다. 심지어 신호도 무시하는 차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신호위반은 도로폭이 좁은 이면도로의 스쿨존에서 더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스쿨존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으면 주생신호가 빨간불인데도 그냥 횡단보도를 건너버리는 차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위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다 신호가 바뀌는 즉시 앞만보고 뛰어나가는 아이들. 그리고 서행하지 않고 신호조차 무시하는 차. 이 두가지 요인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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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문화연구원이 인천지역에서 일어난 어린이 보행사고 51건의 유형을 조사해 봤습니다. 조사결과는 이 두 조합의 결과가 얼마나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지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조사대상 사고에서 81%가 아이들이 앞만보고 뛰다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아이들의 뛰는 습관과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결과가 어린이 보행자 사고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중에서 62%가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럼, 횡단보도에서 두가지 원인을 꼼꼼히 따져봅시다. 일단, 아이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무단횡단을 제외하곤 신호를 보고 건넜습니다. 단지 죄가 있다면 오는 차를 보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뛰었다는 겁니다. 반면, 차들은 명백히 신호를 위반했습니다. 차들이 잘못한 겁니다. 그럼 해결책은 차들이 과속하지 못하게 하고 신호를 잘 지키도록 하면 됩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서행하고 신호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고 계속 단속하고도 있지만 잘 안지켜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보행신호를 조금 더 늦게 주는 건 어떨까요. 현재 주행신호가 빨간불이 들어오고 1~2초후에 횡단보도의 녹색불이 들어옵니다. 이 시간을 조금 더 늘리자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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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이가 횡단보도에 서서 정면에 있는 신호등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스쿨존이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행중인 차가 있습니다. 횡단보도에 다다랐는데 주행신호가 녹색불에서 노란불로 전환되며 빨간불로 바뀌러 합니다. 이미 속도도 있고, 갑자기 서기도 그래서 그냥 빨리 지나가려는 마음에 엑셀레이터를 조금 더 밟습니다. 그 순간 신호가 바뀌고 아이는 신호만 보고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아이는 차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만약 주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고 약 5초후에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불로 바꿨다고 가정해 봅시다. 5초면 주행신호를 위반한 차가 횡단보도를 지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아이는 횡단보도의 보행신호만 보고 건너기 때문에 아이는 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습니다. 주행신호가 정지신호로 바뀌고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조금 더 늦게 바뀐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상상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 아직 시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효과에 대해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조건 신호만 보고 앞으로 뛴다는 것과 운전자들의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이 어린이 횡단보도 사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요소를 피하기 위해 시간 차이를 두자는 방안은 한번쯤 시범적으로 운영해 볼 가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쿨존만이라도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면 어떨까요?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만 시범적으로 몇 곳에서만이라도 운영해 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이 작은 상상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횡단보도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작지만 큰 배려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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