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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법부를 응징하려고…"

60대 할아버지, 대법원 앞에서 쇠망치를 휘두른 사연

[취재파일] "사법부를 응징하려고…"
지난 3일 경찰에 60대 할아버지가 붙잡혀 들어왔습니다. 보통의 피의자들과 달리 취재진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되려 기자들에게 전부 다 얘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대낮에,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정문 앞에서 75cm나 되는 쇠망치를 휘둘렀다는 할아버지. 경비요원이 말릴 새도 없이 정문 바로 옆 '대법원'이라 새겨진 표지석을 내리쳤습니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해 할아버지의 '과감한 스윙'은 멈췄지만 이미 '대법원'의 'ㄷ'과 'ㅂ'은 부서졌고, 'ㅇ'은 아예 날아갔습니다. 할아버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05년 9월, 아내와 가정 불화가 불거진 게 발단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는 커졌고, 급기야 처가 식구들이 자신의 집으로 들이닥쳐 아내를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처가 식구들을 주거침입, 구금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되려 할아버지에게 무고죄로 징역 8월을 선고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항소했고, 몇달 뒤 벌금 5백만원형으로 보다 가벼운 벌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들을 고소했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벌을 내린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차례 항고, 상고를 거듭했지만 달라진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들이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검찰에 또다시 고소를 했고, 할아버지의 신청은 번번이 기각됐습니다. 급기야 검사와 판사 등 32명을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역시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최근까지 치른 재판만 60여 차례, 할아버지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판단, '사법부를 응징해야 한다'며 쇠망치를 휘둘렀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사연이야 어찌됐든, 대법원 표지석을 깨부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실 일은 아니지 않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여전히 당당하게 답하시더군요. "표지석을 부순게 잘했다는게 아니다. 단지 사법부의 잘못을 응징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법원의 상징인 표지석을 부수려 한거다, 그것도 정문 밖에 있는 걸로..."

본인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버리시니 더이상 따져묻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입장에서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면 한시간도 부족했겠지만,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 신분인지라 저 역시 시간을 더 끌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에 가니 정문 옆 표지석은 흰 천에 덮여있었고 그 옆엔 '보수중'이란 간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좀 짠했습니다. 법원에 불만있으면 쇠망치 휘두르라고, 스트레스 풀으라고 표지석을 세워놓은 건 아닐테니 말입니다. 자신의 땅 문제로 인한 불만을 표출할 데가 없어서 국보 1호인 남대문을 한순간에 태워버린 할아버지도 문득 생각났습니다.

석궁 테러 사건으로, 또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법으로는 싸울만큼 싸웠고, 다른 방식으로 사법부를 응징할 수밖에 없었다는 할아버지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쇠망치를 휘두르는 게 최선이었다고 했던 할아버지는 경찰에 구속됐고, 사법부를 응징하기는커녕 더이상  싸울 수도 없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요. 표지석이 제 모습을 되찾게 되면 이 할아버지는 그냥 잊혀지게 될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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