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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름조차 믿고 넣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

[취재파일] 기름조차 믿고 넣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
요즘 기름값 비싸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도 안됩니다. 너무 오랫동안 계속 오르다 보니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기름값이 참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소비량은 전혀 줄지 않습니다. 기름값 비싸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소비수준에서 견딜만한 수준인가요? 아님 그냥 이제 무감각해진 걸까요?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절대로 무감각해지거나 견딜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피넷을 통해 싼 주유소를 찾아 다니고, 주변보다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라면 가는데 드는 기름값과 시간 생각하지 않고 그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찾는 주유소들이 우리를 속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가짜 석유 문제를 취재했습니다. 여전했습니다.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도심에서 브랜드 주유소 간판을 내걸고도 당당하게 가짜 석유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주유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변 주유소보다 싸다는 겁니다. 주변 주유소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팔면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여기에다 가짜석유까지 팔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 가짜 석유를 피하려면 어디서 넣어야 할까?

4대 정유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를 이용하는 게 그나마 안전합니다. 물론 가격은 조금 비쌀 수 있습니다. 정유사들의 소매업 진출이 허용되면서 정유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주유소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영세 사업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직영주유소는 그래도 정유사들이 직원을 파견해서 운영을 하다 보니 가짜 석유에 대해선 그나마 안전 지역입니다. 그 이유는 주유소 운영자가 월급을 받는 기업의 직원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가짜 석유까지 팔면서 이윤을 챙길 동기가 없습니다. 그럼, 왜 개인사업자들은 가짜 석유를 파는 유혹에 빠질까요?

이젠 주유소 사업이 돈이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90년도 이전에는 주유소 한다고 하면 그래도 나름대로 부자였습니다. 그때는 일단, 2km 이내에 주유소가 하나만 있어야 했고, 대형정유사들이 소매업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기름도 쌌습니다. 그만큼 남는 것도 많았습니다. 경쟁도 없고 마진도 좋으니 누구나 하고 싶었던 사업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 이후 2km 규제 등이 풀려 무한경쟁에 돌입하면서 상황은 점점 어렵게 됐습니다. 게다가 4대 정유사들이 기름 공급을 독점하면서 가격은 계속 올라갑니다. 물론, 국제 유가가 올라간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4대 정유사들이 직영점을 늘리면서 시장 가격을 정하는 것에서도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것도 가격인상의 한 요소였다는 게 개인사업자들의 주장입니다. 직영주유소가 서울시내에만 46%, 거의 절반에 달하는데, 이 곳에 자기들이 원하는 가격으로 공급하면 이 가격이 시장가격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2천 원을 넘긴 소매가격에서 정유사들의 공급가는 1900원대 중후반이라고 합니다. 주유소에서는 1리터를 팔면 한 50~60원 남는데 인건비에 임대료에, 이것 저것 나가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1리터에 100원 정도는 남기는 게 통상적인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적자가 아니면 다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2000년도에 820개 정도로 늘어났던 서울시내 주유소들이 지금은 650개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직영 주유소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실제 영세 사업자들의 수는 훨씬 줄어든 셈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망하기 전에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는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럼, 가짜 석유를 팔면 얼마나 남을까? 법을 어길 만큼 남는 게 많은걸까? 많이 남습니다. 대전 유성과 경기도 광명에서 가짜 석유를 팔다가 적발된 피의자는 대전에 있는 주유소에서는 하루에 매출이 3천만 원에 달했다고 취재 과정에서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매일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정도의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럼 한 달이면 30억 매출입니다. 마음만 먹고 몇 달 하면 한 몫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짜 석유를 팔다가 적발돼도 현재 처벌은 벌금 5천만 원이나 3개월 영업정지입니다. 적발돼도 남는 장사인 겁니다. 가짜 석유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미 유통도 대형화 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예 주유소 탱크 하나를 가짜석유로 가득 채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짜 경유는 그냥 등유에다가 색깔만 내는 착삭제를 섞어서 팔기도 합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한탕'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것도 가짜 석유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입니다.

그나마 처벌 기준이 앞으로 강화됩니다. 벌금이 1억 원으로 늘고 한 번만 걸려도 허가를 취소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정도로는 왠지 근절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개인사업자들의 사업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가짜 석유를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단속도 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팔면 걸린다.' 그리고 '걸리면 망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단속이 중요합니다. 파는 주유소를 단속할 게 아니라 일단 제조책을 잡아내는 데 경찰의 수사력을 모아야할 겁니다. 가짜 석유를 팔다가 잡힌 사람들은 결코 공급책을 불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급책만 있으면 수사 받고 벌금 내고 나가서 다시 다른 곳에서 바지 사장 내세워서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공급책들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통해 싹을 뽑아 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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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속의 효율성도 제고해야 합니다. 서울시내에서 지난달 가짜 석유를 팔다가 적발된 한 주유소는 적발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아무런 제재 없이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행정처분에 걸리는 시간 때문입니다. 교묘하게 적발시점과 결과가 나오는 시간 사이에 사장 이름을 바꾸면서 전 사장에게 행정처분을 내려야 할지 검토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리고 있는 겁니다. 이 사이에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속과 처벌이 이원화된 결과입니다. 단속은 한국석유관리원에서, 처벌은 관할구청과 경찰에서 담당합니다. 주로 관할구청의 행정처분이 전부입니다. 간단히 단속을 하는 한국석유관리원에 처벌권을 함께 주면 단속의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구청직원이 털어놓았습니다. 단속이 되는 순간 영업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이라도 주자는 겁니다. 단속원이 단속하고 경찰에 연락해 경찰이 다시 오고, 이를 바탕으로 관할구청이 행정처분을 내리는 구조를 바꿔, 현장에서 적발과 동시에 영업을 정지시키만 해도 단속 효과는 커질 겁니다. 이를 통해 현장 장악도 빨라지고 여죄에 대한 수사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4대 정유사들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현재 브랜드 폴을 달지 않고 영업하는 주유소는 거의 없습니다. 모두 특정 브랜드의 폴을 달고 영업을 합니다. 시민들은 바로 그 브랜드를 믿고 주유소를 찾습니다. 그런 믿음에 보답을 해야할 기본적인 책임이 있는 겁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취재 과정에서 저에게 당당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항상 관리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런데 저는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몇 대의 단속차량을 가지고 자체 단속을 한다고 자랑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브랜드를 믿고 주유소를 찾은 소비자들을 모른 체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선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직접 성의를 다해 보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보상해준 피해액은 해당 주유소 사장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던지 다른 방법으로 보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단지 이름만 빌려주고 공급계약을 맺을 뿐이니 책임이 없다는 태도는 소비자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행태입니다. 소비자들에게 법원에서 해결하든 알아서 하라는 태도부터 고쳐야 하는 겁니다.

왜 정유사가 주유소 사장이 잘못한 것 까지 책임져야 하냐고요? 시민들이 브랜드를 믿고 주유소를 방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유사는 이런 시민들 덕분에 이익을 얻기 때입니다. 정유사들은 막대한 순이익을 매년 올립니다. 그런데 그럴때 마다 항상 수출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다고 강조합니다. 심지어는 TV광고까지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내수시장에서도 과점체제를 유지하며 수익을 올리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겁니다.

취재를 하면서 가짜석유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름조차 믿고 넣을 수 없다는 현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불신의 사회를 대변하는 또 하나가 단상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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