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국에 접수된 제보 사진 한 장. 수십여 기의 묘지 사진입니다. 집에서 찍었다고 했습니다. 진짜? 어디 잘 보이는 데를 찾아서 찍은 거겠지, 어디서 찍은 건데요? 물었습니다. 제보자는 거실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진짜-아? 거실에서도, 안방에서도, 아이들 방에서도 묘지 view라고 했습니다. 바로 제작 결정했습니다. ‘묘지 view’ 아파트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누가 잘못했느냐를 떠나, 이것은 논란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풍경은 사진보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시야 한 가득, 묘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풍경입니다. 언뜻 세어도 40여 기는 됐습니다. 최근 조성돼, 잔디가 채 자라지 않은, 붉은 흙빛이 감도는 무덤도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화장한 뒤 유골 가루를 뿌리는 수목장도 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밤에 잠이 들 때도, 공부방에서 책을 보다 창밖을 봐도 묘지가 보입니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게 아니라, 묘지를 분양받았다고, 주민들은 울분을 토합니다. 자신들이 '묘지기'냐고 반문합니다.
묘지가 시야 한 가득 들어오는 집은 모두 117가구입니다. 그것도,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잡은 통계입니다. 통계 제목은 ‘묘지 조망세대 계약 현황판’입니다. 인천에 있는 이 아파트는 전체가 588가구. 전체의 20% 정도가 반갑지 않은 묘지 조망권을 얻은 셈입니다. 405, 406, 407, 408동이 수십여 기의 묘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지어졌습니다. 나머지 아파트에서도 동간 사이로 묘지 일부가 보입니다.
주민들 주장의 핵심은 ‘속았다’는 것입니다. 묘지가 있는지 사전에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하는 부류가 있고, 일부는 묘지가 있다는 것은 들었는데, 시공사 측이 몇 개 없다며 둘러댔다고 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묘지가 그렇게 많은 곳에, 아파트를 지어 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지은,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라서 믿고 계약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죠. 주민들은‘사기 분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분명히 사전 고지했다’는 입장입니다. 본사를 찾아간 제게 ‘계약자 확인사항’이라는 문서를 보여줬습니다. 총 26개의 확인사항. 19번을 보니, “단지 서측 일부에 종묘가 존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계약자로부터 서명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서류를 주민들한테 가져가 물어봤더니, 서류를 보관하고 있는 집이 없었습니다. 계약 당시 여러 문서 가운데 하나로 사인을 받아, 건설사만 보관해온 것 같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사전 고지’했다고 하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였습니다.
양측이 지금까지 모두 갖고 있는 것은 계약서입니다. 현대건설은 여기에도 같은 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묘지가 있다고 미리 밝혔다는 것이죠. 주민들을 다시 찾아가 공급계약서를 확인해봤습니다. 총 44개 항목이 A3 용지에 빽빽하게 적혀 있습니다. 소비자는 보험 약관처럼, 이것을 정독하지는 않습니다. 44개 항목 가운데 37번, 역시 단지 서측 일부에 종묘가 존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로 재어봤더니, 글자 크기가 가로 1mm 였습니다.
여기부터 애매해집니다. 1mm 크기의 글자는 크다? 작다? 읽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충분하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전례가 있습니다. 2007년 1mm 크기의 글자로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설명한 건설사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이유로 시정 조치를 내린 적이 있었던 겁니다. 그때도 현대건설이었습니다. 깨알 같은 글자로 “입면디자인으로 인하여 일부 세대의 창문 상하부 장식에 의한 간섭이 일부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는 표현이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해독 가능하십니까? 모델하우스 창문과 실제 아파트 창문 크기가 다를 수 있다, 이런 얘기였다고 합니다.
난해하고, 아리송하고, 부정확한 표현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묘’라는 단어입니다. 사전 찾아보시면, 조선 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이라고 돼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 타면 가는 그곳입니다. 그런데 단지 서측에 있는 수십여 기의 묘지는 한 가문의 조상님일 뿐, 조선 시대 역대 임금님은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특정 종씨의 묘니까 ‘종묘’라고 표현했다? 분양가 4~5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계약서에 사전적 의미의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계약서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종묘가 있으니, 현장을 반드시 확인해라. 공사가 진행 중일 때, 현장 확인한 분들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못 봤다고 했습니다. 묘지 앞에 펜스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에게 수소문해 당시 사진 한 장을 구했습니다. 500m 정도 떨어진 다른 아파트 옥상에서 찍은 사진인데, 정말 펜스가 보였습니다. 공사 현장 건물과 비교해보니, 펜스 높이는 2층 건물과 비슷했습니다. 묘지가 안 보일만 했습니다. 또 아파트 부지는 야산보다 낮습니다. 펜스의 설치 목적이 묘지를 가리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펜스는 어쨌든 묘지가 보이지 않도록 기능했습니다.
사실, 주민들이 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던 것은 아닙니다. 취재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위성사진을 봤더니, 공사 전부터 묘지가 있던 것이 보였습니다. 작은 점으로 드문드문 나타나는데, 어라 이게 뭐지? 할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라도 묘지를 확인한 사람이 이 아파트를 구입할 이유는 특별히 없습니다. 결국 588세대 가운데 지금까지도 미분양 물량이 수두룩합니다. 분양가보다 수천만 원 떨어진 급매물만 단지에서 속출할 뿐, 거래도 뚝 끊겼습니다. 입주하자마자 ‘묘지 아파트’라는 오명만 남은 상태입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제가 가서 봐도 좀...”이라고 했습니다. 아파트 입지에 문제는 있다는 것은, 시공사도 부인을 안 합니다. 그러고서 묘지 조망 세대 25가구를, 같은 단지에서 미분양이었던 다른 집으로 바꿔줬습니다. 늦게 이사온 몇몇 집은 이런 방법도 없고, 묘지를 마주보고 살고 있습니다. 밤이 되면 묘지 반대편에는 불 켜진 집이 얼마 없습니다. 단지에서 '유령 라인'이 된 겁니다. 묘지 조망 세대는? 악성 미분양 물량으로 남을 전망입니다. 모델하우스만 보여주고 묘지 조망 세대를 그럭저럭 팔았지만, 묘지 가문의 후손이 아닌 이상, 그 집을 구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묘지 view'라는 황당한 조망권 정보는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제공돼야 했습니다. 건설사는 그러나 해당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팔면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부정확한 표현으로, 그것도 찾기 힘들게 제공했습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런 묘지 얘기를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알려주기는 했어야 합니다. 지금도 미분양이 잔뜩인데, 묘지가 이만큼 있다는 걸 계약자들이 알았다면, 대체 몇 명이나 이 아파트를 샀을까요?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