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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낭에 5억 현금 가뿐…장롱에 숨는 '5만 원권'

탈세 비밀창고, 현금개수기, 그리고 5만 원권

[취재파일] 배낭에 5억 현금 가뿐…장롱에 숨는 '5만 원권'
병원 건물 비밀창고에 숨겨둔 현금 114억 원,
자신의 여행용 가방 곳곳에 넣어둔 채 집에 보관한 24억 원,
민간인 사찰 은폐 대가로 건네 받은 5000만 원 돈 다발,
마늘 밭에서 발견된 돈 뭉치 110억 원.

최근 이렇게 현금 돈 뭉치가 뉴스에 많이 등장합니다. 돈을 쓰기보다 숨겨두고 있는 겁니다. 뭔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세청 탈세 조사에 적발된 의사들도 그랬습니다. 자신의 병원 건물을 불법 개조해 현금으로 받은 수입은 숨겨두고 소득신고에서 누락했습니다. 집 안 곳곳에 숨겨두기도 했습니다. 누굴 믿을 수 없으니 직접 현금을 세야 했고 그래서 은행에서나 볼 수 있는 현금 개수기를 장만해 뒀습니다. 돈을 세는 동안은 아마 짜릿했을 겁니다. 탈세 적발이 돼 세금 추징되고 고발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탈세를 할 때 현금을 숨겨두는 이유는 수입을 속이려면 지출도 축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하려는 겁니다. 현재 금융권은 고액현금을 거래할 때는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해야 합니다. 하루 5000만 원 이상에서 지금은 2000만 원 이상으로 낮아졌습니다. 신고된 내역은 의심스러울 경우 탈세나 범죄 관련 여부를 파악하는 정보로 쓰이게 됩니다.

탈세를 마음 먹은 의사들이 수술비로 현금을 받아 빼돌리려 하면 은행에 입금시키기 꺼릴 수 밖에 없습니다. 비밀창고와 현금 개수기가 등장한 이유입니다. 성형이나 피부 미용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인들이 카드가 아니라 주로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은 공급 측면의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모두 5만원권으로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5만 원이라는 고액권이 없었으면 그만한 돈을 넣어둘 곳 찾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건네기도 힘듭니다. 만 원권으로 1억원을 넣으면 무게만 11kg이 넘지만 5만 원은 1억 원이라고 해도 불과 2.2kg입니다. 노트북 넣는 배낭 가방에 넣어보니 5억 원 가까이 들어가더군요. 도입초기 우려했던 것처럼 범죄에 악용되기 쉬운 겁니다.

실제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09년 6월부터 발행된 5만 원 권의 지난해 말까지 회수율은 40.3%에 불과합니다. 10장을 발행해 시중에 보냈으면 4장만 유통돼 되돌아 온다는 뜻입니다. 나머지 6장은 시중에서 돌지 않고 어딘가에 잠자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잠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5만원권이 3억5000만장, 금액으로는 17조5119억 원입니다. 만 원권의 환수 율이 108.9%, 5000원과 1000원권 환수 율도 100% 육박한다는 점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이렇게 환수 율은 낮지만 5만 원 권의 발행잔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발행잔액은 25조9천6백억 원으로 1년 만에 36.7%나 늘었습니다. 전체 화폐 발행 잔액의 절반이 넘는 55.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만 원권 발 행잔액과 수표 발행이 감소세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어딘 가에서는 계속 현금을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서 돈을 돌리지 않고 숨겨두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국세청이 지난해 고소득 자영업자들을 조사해서 3000억 원 넘는 세금을 추징한 뒤 현금을 주로 요구하는 업종들을 별도로 추가 조사에 나선 이유입니다.

연간 최소 천 만 원이 넘는 비싼 피부관리상품을 팔면서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고급 피부 관리숍, VIP미용상품권을 현금으로 판 뒤 소득 신고에서는 빼고 웨딩 업체들과 제휴해서 올린 수입은 차명계좌로 관리하는 고급 미용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고객들을 상대로 수 천만원을 받고 수입 시계와 가구를 현금으로 판 수입업체 등이 대상입니다.

천 만원 넘는 연간 회원권을 현금으로 팔아서 소득을 빼돌린 뒤 부동산 부자로 지내고 있는 고급 스파 업체 사장, 부유층으로 상대로 멤버십으로 운영하면서 술 값 수 백만원을 현금으로 받아 세금을 안 내고 있는 유흥주점 업주 등도 조사 대상입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금융거래를 추적하고 거래 상대방 확인 조사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올해 경기가 어려워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더욱 세금 낼 사람들이 제대로 내도록 숨은 소득을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잠자고 있는 5만원 권 규모를 감안하면, 이번에는 또 얼마나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탈세 행각이 나올 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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