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입니다. 날짜상의 계절과 실제의 계절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년 마다 한 번씩 넣어주는 공짜 달이죠. 덤달, 썩은 달 등등 여러 이름이 있지만 윤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음력에서 온 것이다 보니 양력에 익숙한 세대는 '윤달이 뭐야' 하기 쉬운 게 사실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윤달을 맞아 매일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말이 있죠. 윤달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없던 달이 추가로 더 생긴 것이라서 이 때는 부정을 타거나 액이 끼지 않는 다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윤달에는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을 감시하는 일을 모두 쉬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도 상관 없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묘지를 손보거나 옮긴다든지, 아니면 집안 어르신의 수의를 장만한다든지 등등 평소에 하기에는 '궂은 일'로 여겨졌던 일들을 하는 풍습이 예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고요.
그런데 왜 전쟁이냐고요? 현재, 시신이든 유골이든 화장을 하려는 사람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e하늘장사종합정보' 시스템을 통해 원하는 화장시설과 시간을 예약해야 합니다. 이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건 일년 전 쯤인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일단 기존에 화장시설에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서 화장 예약을 할 때는 화장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고요, 또 일부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직원들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해 화장 순서를 바꾸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전국의 화장시설에 있는 화장로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원하는 사람이 날짜와 시간을 고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분묘 문제는 심각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살아서는 주택난, 죽어서는 묘지난'이라고 말 할 정도니까요. 사실, 매장을 할 것인지 화장을 할 것인지는 고인의 평소 뜻과 유가족들의 생각을 통해 결정할 일이지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50년 쯤이면 온 나라의 산이 묘지로 뒤덮일 것이라는 걱정이 퍼지면서 매장 위주의 장례 문화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산에 상여를 메고가 매장하는 일이 힘들어졌고, 도로에서 일정 반경 안에는 매장을 할 수 없도록 조례를 제정하는 지자체들도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화장하는 비율은 계속 올라서 요즘에는 70%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요가 올랐으니 화장장도 늘었을까요? 복지부가 애를 쓰고 있지만 화장장 자체가 워낙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꼽히다보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원하는 날짜에 화장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왕왕 들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니, 유골을 화장해서 뿌리거나 납골당 등에 봉안하려는 수요가 잔뜩 몰리는 윤달이야 오죽할까요.
실제로 복지부가 과거 윤달 개장 유골과 관련해 작성한 문서를 봤더니 고양시에 있는 화장시설인 서울시립승화원은 평달인 경우 하루에 14건 화장 신청이 있었던 반면 윤달에는 하루에 42건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는 양호한 편. 정선군은 평소 4건이다가 52건으로 대전시 정수원은 15건에서 80건으로 늘어나는 등 거의 폭주 수준이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국 화장 시설의 화장로 가동 횟수를 3배로 늘려서 하루 천 2백건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놨는데도 부족한 실정이랍니다.
화장을 예약하려고 벌써 10일 넘게 올빼미처럼 지내고 있는 가정을 찾아가 봤습니다. 복지부 사이트 시스템 상 화장을 하려고 하는 날로부터 보름 전, 시간은 새벽 0시부터 예약이 가능합니다. 제가 11시 10분쯤 그 곳에 도착을 해서 집안으로 들어가봤더니 벌써 컴퓨터가 켜져 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11시 반, 아버지되시는 분이 컴퓨터 앞에 앉으셔서 해당 사이트를 열고 신용카드 번호와 전화번호, 화장하려고 하는 시설, 시간 등을 미리 입력하십니다. 그렇게 입력해 두는 창이 네 개. 왜 이렇게 같은 내용으로 창을 띄우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0시가 땡 하고 되는 순간 사이트가 먹통이 된답니다. 아무것도 뜨지 않아서 조바심을 내고 있으면 창이 닫히거나 요청하신 웹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글이 뜨기 일쑤라서 잽싸게 다른 창을 누르려고 나름의 준비를 하는 거라네요. 아버지만 이렇게 오밤중에 고생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자꾸 예약이 안되니까 혹시 집에 깔린 인터넷이 속도가 느려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아들은 PC방에서, 딸은 노트북으로 예약을 시도하는 등 온 식구가 총동원되고 있었습니다. 일단 새벽 0시에 했다가 예약이 안되면 다른 사람이 취소를 하는 지를 지켜봐야 하는데요, 취소가 뜬 시간 부터 한 시간 이후에 그 자리에 신청을 할 수 있다보니 새벽 서너시가 되기는 예사였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밤 바다 소리없는 화장 예약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지 사이트에는 화가 난다, 예약이 어떻게 이렇게 어려울 수 있냐, 눈물 난다 등등 항의와 푸념이 섞인 글들이 많았습니다.
묘를 개장해서 유골을 화장해야 하는데 현실이 이러니 꼼수는 생기기 마련이겠죠. 전문 업체들을 찾아가 개장 상담을 받아봤습니다. 혹시 윤달이라는 성수기를 맞아 가격에 바가지를 씌우면 가만 있지 않을테다, 단단히 마음 먹고 갔는데 그동안 많은 지적과 자정 노력 덕분인지 가격은 대체적으로 합리적이더라고요. 묘 한 기당 50만 원에서 70만 원 선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비싸다 할 수 있겠지만 작업을 하러 가는 인부들의 하루 일당, 묘를 파기 위한 포크레인 같은 장비 대여료 등을 감안하면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개장한 유골의 처리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유골을 현장에서 바로 태워준다고 말을 꺼냅니다. 화장시설을 거치지 않고 화장을 하다 적발되면 징역 1년 이하나 5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산림청 단속에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스레 물었더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화장장 예약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복지부는 화장 시설을 늘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70%에 육박하는 화장율이 장차 80%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일단 현재 전국에 있는 화장 시설은 52곳에 7곳을 추가로 지어서 내년부터는 59곳을 운영하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병원 장례식장이 아닌 일반 장례식당에 화장로를 한 두개 정도 설치하도록 해서 화장을 하기 위해 먼 도시까지 오거나 고생을 하는 일을 좀 줄여보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지금은 수목장이나 풍장처럼 자연장지라고 해도 주거, 상업, 공업 지역에는 조성이 불가능했는데 이것도 일정 지역안에서는 가능하도록 법령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취재를 하면서 언제 개장해도 좋다고 알려진 윤달 중에서도 더 좋은 날짜를 잡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생전 처음 점 집도 가봤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인데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땅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토왕'이 하늘에 올라가 있을 때 개장하는 게 좋다며 어떤 날짜를 콕 집어줍니다. 날짜를 물으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싶어 물어보니, 올해는 윤달이 날씨가 따뜻해 얼었던 흙이 풀리는 봄에 끼면서 많은 사람들이 온다네요. 물론 자기 점집 선전일 수 있겠지만요.
조상의 묘를 파는 일인데 이것저것 전부 고려해서 하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때나 하면 어떻느냐고 윤달이 뭐 대수냐고 하며 몰아세울 일은 결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고생스럽지 않게 님비현상이 사라지거나 줄어서 화장시설 부지 확보가 쉬워지고, 국회의원들이 관계법령 개정안도 제발 썩히지 말고 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참, 화장 비용 부담스러워하셨던 분들 많으실겁니다. 화장시설이 있는 지역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그 지역 주민은 저렴하지만 다른 지역 주민은 차이가 4배에서 8배 가까이 나던게 현실이니까요. 모두 다 해당되는 소식은 아니지만 내년 2월부터는 저소득층 기초수급자 등에 대해 화장 사용료를 면제해준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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