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민간인 사찰이 죄가 안 된다고요?

민간인 사찰 사건에 관한 불편한 진실

[취재파일] 민간인 사찰이 죄가 안 된다고요?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연일 새로운 폭로와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김제동, 김미화 씨 등 방송인을 둘러싼 사찰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죠. 권력기관의 속살과 주변 인물들의 부나방 같은 행태 역시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해서 반드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그 불편한 진실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사찰’과 ‘감찰’은 다르다

사찰(査察) : 조사하고 살핀다는 뜻입니다. 말 자체에 그렇게 음습하고 불법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흥신소 직원이나 국가기관원이 검은 안경을 쓰고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누군가의 뒤를 캐는 게 떠올려지는데 말입니다. 이런 뒷조사를 뜻하는 단어로는 사찰(伺察 :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이 보다 근접한 단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찰(監察) : 감독하여 살핀다는 뜻과 함께 크게 두 가지 용도로 쓰입니다.

➀ 단체의 규율과 구성원의 행동을 감독하여 살핌. 통상적으로 쓰이는 뜻입니다.
➁ 감사원의 직무 행위의 하나. 공무원의 위법, 비위사실에 대한 조사 및 징계 처분 등. 검찰과 경찰 내에도 감찰 관련 기구가 있지요.

이렇게 감찰은 공식적인 기구나 기관에 의한 조사를 의미하며 법률적인 행위를 수반합니다. 이에 비해 사찰은 비공식적이고 민간에 의한 조사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2. 사찰했다고 처벌되지 않는다?

이 말을 접하고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문제가 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의 뒤를 캤다, 즉 사찰을 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일도 아니면서, 게다가 수사권도 없으면서(공직윤리지원관실은 수사권이 없습니다) 멀쩡한 민간인이 뭐하는지 살피고 다니는데도 이를 처벌할 법조항이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그런 법도 없냐'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실상이 그렇습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처벌이 되는가 봤더니, 사찰 과정에서 다른 불법행위(예를 들어 폭행, 감금 등)가 따르는 경우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난 2000년 경찰청 특수과, 일명 사직동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사직동팀 간부가 제보자로부터 돈을 받고 신용보증기금 지점장을 사찰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점장을 10시간 동안 호텔에 가둬놓았다가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총리실 사찰 사건의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도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뒷조사를 넘어, 사표를 내게하고 지분을 포기하도록 강요한 혐의 때문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렇게 처벌하기가 어렵나? 흔히 말하는 직권남용도 안 되나?"라고 하실 분 있으실텐데요. 현직 검사에게 물어봤더니 직권남용, 이것도 꽤 입증하기 어려운 범죄라고 합니다. 법률적으로 보면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좀 더 풀어보면 여기서 의무는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도덕적, 심리적 의무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구를 뒷조사해서 이른바 쫄게 만드는 것 자체로는 직권남용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거죠.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법률적인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정작 불편한 것은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국민의 뒤를 캤고, 제대로 된 반성은 커녕 사찰 관련 증거마저 없애려 했다는 불쾌하고도 불편한 진실 아닐까요? 재수사로 모양새 빠진 검찰도 이번에는 법적 잣대와 함께 상식의 잣대를 갖고 불편한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야겠습니다.

3. 그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법률 전문가들은 처벌할 규정이 없으니 결국 국회에서 법을 새로 만들어야한다고 제언합니다. 어떤 법이냐 하면 공무원이 자신의 업무를 벗어나서 사찰처럼 엉뚱한 일을 할 때 내부 징계가 아니라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이름은 사찰행위금지법 정도 어떨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1997년에 이뤄진 정치자금법 개정이 선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떡값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대가를 특정해서 주는 뇌물성 자금이 아니라 명절이나 인사철에 오가는 보험금 성격의 불법자금을 이르는 말이었는데요, 97년 전에는 이렇게 기업인이나 이해관계자가 정치인에게 떡값을 줘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처벌 규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여야 정치권이 합의해 떡값 수수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민간인 사찰 문제도 이처럼 정치권이 네탓하며 공방만 벌일 게 아니라 시민들의 분노를 입법화해야 합니다. 관련해서 SBS 법조팀 조성현 기자가 4월2일 8뉴스에서 살짝 제안을 했는데 이런 지적들이 모아져 곧 출범할 19대 국회에서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