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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0만 원이면 미국 의사증 준다고?

미 대체의학 의사 자격증의 실체

"단돈 200만 원이면 여러분도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이런 말을 들으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이 말만 믿고 선뜻 돈을 건네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군요. 왜일까요?

이야기는 지난해 환갑을 앞둔 나이에 미국의 한 단체로부터 대체의학 의사 자격증을 받았다는 분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이 분이 받은 영어로 적힌 증서에는 분명히 Doctor of Alternative Medicine 이라고 적혀있더군요. 대체의학 의사? 이 분은 받아놓고서도 이게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어떤 자격시험이나 논문제출, 강의 같은 건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자격증 발급비라는 명목으로 186만 원을 냈더니 며칠 만에 이 증서가 나왔다는 겁니다. 증서를 발행하는 단체가 괌의 이스트웨스트라는 대학의 재단이사장이자 대표교수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평소 자원봉사를 하고 싶던 차에 지인의 권유로 귀에 침을 놓는 이혈치료 강습을 8번 정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강의를 하던 사람이 이혈치료봉사자격증이란 걸 만들어 주면서 자기가 아는 괌의 한 대학 이사장이 있는데 그 사람이 미국에서 대체의학인증협회라는 걸 만들었고 여기서 자격을 인증 받으면 미국에서도 한의사처럼 침을 놓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배운 침술이 그렇게 대단한가 생각도 들었고 또, 미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좌이체를 하려는데 그 강사가 일일이 사람들에게 현금을 모으더라는 겁니다.

한꺼번에 전달하는 게 좋다는 말에 의심 없이 모두 현금으로 냈다고 하더군요. 납입 영수증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믿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격증을 받으러 괌의 이스트웨스트대학 이사장을 만나러 갔는데 대학의 서울사무소라는 곳이 오피스텔의 사무실 구석에 책상만 덩그러니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 사무실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여러 명이 나눠 쓰는 공동사무실이었다는 거죠. 여기서 의심이 들더랍니다.

이 이사장은 의심의 의사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대학입학을 유도했다고 합니다. 한의사과정은 12학기요, 빨리 학위만 따고 싶으면 1년 4학기 석사과정도 있다면서 1년에 학비가 1만 달러라고 유혹했다는 겁니다. 특히 한의사 과정은 50%는 한국에서 진행해도 되는데 나머지는 안 되니 6번은 미국에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군요. 수업과정이나 실습과정에 대해서 일체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희 취재진과 만나게 된 거죠. 일단 미국의 대체의학인증협회라는 것부터 알아봤습니다. 이건 사단법인이라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사설단체인거죠. 그럼 이 단체를 만든 사람이 있는 괌의 이스트웨스트 대학은 과연 공신력이 있는 곳인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대학의 홈페이지를 가봤더니 조잡합니다. 간단한 학교소개만 있지 교육과정이나 입학절차, 교수진 소개란은 모두 같은 내용의 학교소개가 반복해서 뜹니다. 주소는 없고 우편번호와 우체국 사서함만 나와 있더군요. 일단 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말만 들려오더군요. 괌 현지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교민에게 부탁해 이스트웨스트라는 대학을 수소문 했습니다. 이틀 뒤 들어오는 대답은 자신도 들어보지도 못했고 주변의 지인도 알지도 못하고 찾을 수도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미 교육부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습니다. 여기에도 괌에 등록된 대학명부에 이스트웨스트라는 대학은 없었습니다. 괌 관광청에서는 괌에 인가된 대학은 두 개뿐이라면서 그런 대학은 없다고 합니다. 정말 실체가 불투명한 대학의 이사장이라...

여기에 그 이사장이 말하고 다니는 대체의학이라는 건 무엇일까? 이 이사장은 한 교회의 사무실을 빌려 강의를 하고 다녔습니다. 취재진이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진 척 접근해 들어봤습니다. 치료에는 7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공기, 물, 땅 뭐 이런 것을 말하더군요. 강의 내용가운데 황당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꿈에 관한 이야기인데 방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자야 꿈을 많이 꾸고 꿈을 많이 꿔야 내면의 생각들이 정리돼 건강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불을 켜놓고 자면 안구에 자극을 받아 꿈을 컬러로 꾼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국내의 대체의학 전문가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양의와 한의사 자격을 모두 가지신 대학교수 분이었는데 이 분 말씀은 이렇습니다. 대체요법이라는 것은 수 백 가지가 넘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양의와 한의를 제외한 모든 치료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체요법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가운데 학문적으로나 연구를 통해 효과가 증명된 것을 대체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꿈에 대한 치료법은 엉터리라고 잘라 말합니다. 사람은 꿈을 기억하고 못하고의 차이이지 모두가 꿈을 꾼다는 겁니다. 그리고, 꿈을꾸고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깨어있어서 잠을 깊게 들지 않을 것이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불을 켜놓고 자야 꿈을 잘 꾸고 건강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한의사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같았습니다.

이 문제의 이사장을 직접 찾아가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말뿐인 서울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있더군요. 먼저 괌에 이스트웨스트 대학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있다고 합니다. 그럼 대학인가증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여주는 것이 괌의 세무서에서 발급한 사업자등록증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사업자등록증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니 세금은 이 이름으로 내겠습니다와 똑같은 거죠. 그래서, 아니 인가대학목록에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고 건물도 없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대학을 사이판으로 옮기기 위해서 법인만 그야말로 이름만 남아 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합니다. 정말 인가 대학이 맞는지 물었더니 이번엔 통신대학. 사이버 대학이라고 들러댑니다. 교수진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통신대학이니 인터넷 강좌라도 개설했냐고 했더니 미국의 사이버대학은 교재만 나눠주고 나중에 자격시험만 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황당함의 극치였습니다.

그럼 당신이 만든 단체가 어떤 자격을 가졌기에 대체의학 의사라는 자격증을 발급을 했냐고 물었더니 대체의학 의사라는 말은 자기 협회의 회원을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라고 답합니다. 내가 우리 회원을 의사든 박사든 어떻게 부르던지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거죠.

               

또 그렇다면 회원증 발급하는데 무슨 186만 원이나 받았냐고 하니 자격시험비라는 겁니다.그럼 시험을 받느냐? 안 봤다. 대신 이 분들이 귀에 침을 놓는 걸 배웠기 때문에 자격이 충분해 무시험 통과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귀에 침을 놓는 자격은 한의사와 30명 정도의 침구사밖에 없습니다. 엉터리 말장난 같았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대체의학 의사 자격을 준다면서 500만 원까지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서 빨리 발급신청을 해야 되는데 경비가 필요하다면서 현금으로 받아갔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게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자격 발급비가 더 오를 테니 지금 당장 받아야 한다며 재촉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이사장의 과거를 추적해봤더니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과거 기사를 찾아봤죠.) 아니나 다를까 2007년 비슷한 수법을 쓰다 사기죄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더군요. 당시는 미국에서 한의사 자격을 준다면서 수업비를 받았더군요. 똑같은 이스트웨스트라는 실체불명 대학의 이사장이라고 하면서요.

이런 식으로 이번에 이 이사장에게 돈을 내주고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수십 명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50~60대로 나이와 지위에 걸맞는 명함타이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피해자라고 하지만 자신을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과 명예욕 때문에 당한 일이라는 점에서 떳떳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만난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길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이런 자격증을 받았다고 자랑도 했을 터이지만 이런 일이 알려지면 속된 말로 동네 다니기 창피하다는 거죠. 심지어 그깟 200만 원이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법의 심판을 받고도 같은 수법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일이 벌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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