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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용카드가 정부시책? 아이사랑카드로 '꼼수 영업'

만 5세 이하 영유아를 둔 부모라면 아이사랑카드를 알고 계실 겁니다. 올해부터 확대된 만 5세 이하 영유아 보육비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카드입니다. 부모들이 일단 이 카드로 어린이 집 비용 등을 결제하면 정부 지원금이 이 계좌로 입금되고, 나머지 금액은 본인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 드리면 아이사랑카드는 지난해까지 신한 카드 단독 사업자였습니다. 그런데 보육비 지원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지난해 새 사업자를 선정할 때는 컨소시엄으로 입찰을 받았고 ‘KB국민카드+우리+하나’ 컨소시엄이 ‘신한+농협’ 컨소시엄을 근소한 점수로 제치고 올해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컨소시엄은 함께 참여했지만 사업자 선정 뒤부터는 KB국민카드, 우리, 하나SK카드가 각각 가입자를 유치하는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가장 먼저 드러난 문제가 과열 경쟁이었습니다. 카드 가입자를 모집할 때는 연회비의 10%(아이사랑카드의 경우 천 원)를 초과하는 경품을 줘서는 안 되는데 일부 카드 모집인들은 ‘5만 원’을 경품으로 내걸며 가입자를 모집했습니다. 결국 지난 달 말 금융감독원이 3개 카드회사 임원을 불러 불법 모집에 대해 경고를 했고, 해당 카드사들은 카드 모집인이 가져 온 아이사랑 카드에 대해선 검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사랑카드를 발급받는 부모들의 불만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업을 맡고 있는 은행계 카드사들이 정부시책이라는 이유를 들며 각 지점에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강요하고 있고, 체크카드가 아닌 신용카드 발급을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사랑카드는 신용카드, 체크카드 가운데 만드는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카드 가입자를 늘려야 더 이익인 은행계 카드사들이 “복지부 정책이 신용카드다. 체크카드는 저신용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용카드로 가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를 써야 가맹점 수수료도 받을 수 있고 고객으로부터도 할부 이자나 현금서비스 이자, 카드론 이자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912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위험성 때문에 카드사들의 신용카드 발급을 최대한 억제하고 가급적 체크카드 발급을 유도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 시책이라는 이름 아래 마음 놓고 신용카드 가입자를 늘려보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당국의 정책기조에는 정면으로 역행하면서 말입니다.

카드사들은 연회비가 없고 신용카드 부가서비스 때문에 스스로 찾는 고객들이 많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체크카드 부가서비스와 그리 큰 차이도 없고, 신용카드의 주요 부가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전월 카드 결제 실적이 최소 30만 원 이상은 돼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에 잘 쓰고 있던 신용카드를 안 쓰고 이 카드를 쓰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고객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신용카드 발급 유도 영향으로 올해 신청된 아이사랑카드 50만여 장(2월 말 기준 43만 장 신청 + 3월 카드사 신청수 잠정 집계) 가운데 복지부 통계로 3월 27일 현재까지 발급된 25만 장의 65% 이상이 신용카드입니다. 지난해 전체 신용카드 비중 57%를 웃도는 것이고 최근 흐름이 신용카드 비중은 감소하고 체크카드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것입니다.

아이사랑카드 신청자 숫자와 발급된 카드 숫자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카드사들이 아직 보육비 지원 대상이 아니어서 잘못 알고 찾아온 고객들에게도 아이 나이도 확인하지 않고 아이사랑카드를 발급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신청 폭주로 아직 카드가 발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년 동안 발급된 아이사랑카드 숫자가 59만 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너도나도 신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 가입을 유도하는 것 못지않게 개인정보동의를 강요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행 규정은 카드를 만들 때 주민번호 등 필수 정보는 입력하지만, 해당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공유할지는 선택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보험회사, 상조업체, 유통업체 등에 자신의 정보가 넘어가서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나 메일을 받기 싫으면 거부해도 카드 발급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고객 개인정보가 ‘돈’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복지부에서 하는 일이니 반드시 동의해야 카드 발급이 된다”고 고객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보육비 지원만 없다면 그냥 카드를 만들지 않으면 될 고객들은 결국 그걸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신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은행계 카드사들은 불만을 가진 고객이 항의를 해도 ‘정부 시책’ 이라는 권위를 팔았지만, 정색을 하며 정부에 민원까지 넣은 고객들에게는 나중에 사과 전화를 해서 개별적으로 정보 제공 동의를 철회시키기도 했습니다.

은행계 카드사들이 계열 은행을 통해 이런 영업을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당초부터 아이사랑카드 사업 대행의 목적이 이렇게 고객을 확보해 계열 금융회사에서 장기적으로 마케팅 대상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은 금융사의 우량 고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린이 펀드, 어린이 통장, 태아보험 등도 팔 수 있고 구매력 높은 고객 정보이다 보니 다른 곳과 공유할 때 활용가치도 높을 겁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이사랑카드 사업 자체로는 그렇게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은행 계열이 아니라 카드 사업만 하는 회사들이 아예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은행계 카드사들이 피말리는 입찰 전쟁을 벌인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SBS 보도를 통해 이런 실태가 공개된 뒤 아이사랑카드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바로 카드사들에 대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중 경고를 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각 아이사랑카드 발급 창구에 신용카드 발급을 유도하거나 개인정보 동의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고객 안내문을 게시하도록 했습니다. 금융감독원도 카드사들의 불법 개인정보 수집과 신용카드 발급 유도 행위에 대한 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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