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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소청탁 전원 무혐의' 정밀 분석

주진우, 나경원, 김재호 모두 불기소 이유는?

"사건 관련 청탁은 있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이른바 기소 청탁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종료됐습니다. 경찰의 결론은 "김 판사가 사건 관련 청탁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김 판사로부터 부탁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한 박은정 검사나 전화를 한 김 판사 본인에 대한 소환 조사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기소를 빨리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박 검사의 진술서를 근거로 판단을 내린 겁니다. 또 김재호 판사가 진술서를 통해 "전화를 했던 것도 같다"고 밝힌 부분도 근거가 됐습니다. 물론 김 판사는 "네티즌이 올린 나 전 의원 비방글을 빨리 내리게 해달라"는 취지의 전화였지 기소 청탁 전화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맞고소 관련자 모두 무혐의"

그러나 경찰은 "전화는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박 검사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점에 근거 , "사건 관련 청탁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겁니다. 이에 따라 나경원 전 의원의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측이 주진우 시사인 기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부분은 무혐의 처리가 됐습니다. 주 기자가 당시 나꼼수에서 주장한 기소 청탁 관련 내용이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틀린 점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부합한다는 게 경찰 판단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주장할 만한 어느 정도의 근거는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주진우 기자가 김재호 판사와 나경원 전 의원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맞고소 했던 건도 무혐의 처리가 됐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같은 사실을 놓고 한쪽이 진실에 부합한다면 다른 쪽은 거짓에 부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소청탁이 있었다'는 주 기자의 주장이 나름 근거가 있다면, '기소 청탁은 없었다'는 김 판사와 나 전 의원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만 김 판사와 나 전 의원도 모두 무혐의 처리 됐습니다.

그때는 기억 나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 전 의원 선대위측이 주 기자의 주장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던 지난해 10월. 당시 김재호 판사는, 자신이 박은정 검사와 통화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반박 보도자료를 낼 당시엔 기억이 안 났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미 서로 맞고소가 제기되고 나서 올들어 나꼼수에서 박은정 검사의 실명이 공개됩니다. 그리고 "김재호 판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는 박 검사의 진술서도 경찰에 제출됩니다. 김 판사는 이런 사실들이 나온 뒤에야 "전화를 했던 것도 같다"는 기억이 났다고 주장한 겁니다.

결국 반박 보도자료를 낼 당시에는 '전화했던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났던 만큼, 당시에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그런 주장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게 경찰의 결론입니다.
   



용두사미 수사? 경찰의 묘수?

경찰의 이번 결론을 놓고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언론에서는 "판검사 소환 조사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도 보입니다. 또 "어느 누구도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모두 무혐의 처리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비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주요 당사자들이 모두 출석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묘수를 찾아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고소인 신분인 김재호 판사나, 참고인 신분의 박은정 검사에게 여러차례 출석 요구나, 추가 진술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응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하고자 한다면야 김재호 판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은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경찰이 올린 체포영장이 검찰을 거쳐 법원까지 가서 발부될 거라고 예상하는 기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확보한 박은정 검사의 진술서를 근거로 판단을 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경찰은 박 검사 진술서, 뒤늦게 제출된 김재호 판사의 진술서, 그리고 나경원 전 의원의 출석 조사 만으로 기소청탁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사건 관련 청탁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통해, 의혹을 제기한 주진우 기자의 손을 일단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기소 청탁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한 나경원, 김재호 두 사람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리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군가는 비겁하다,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도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현명한 결론을 내렸다'는  목소리도 많은 것 같습니다.

             


기소청탁 처벌은?

자, 그럼 남은 문제 입니다. '사건 관련 청탁은 있었던 것 같다'는 경찰의 결론대로라면 김재호 판사의 과거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데요. 경찰은 이 부분도 간단하게 '클리어'를 했습니다.

기소 청탁이 사실이라면 '직권 남용'의 혐의를 적용해 볼 수 있는데요, 이 직권 남용죄의 공소시효가 5년입니다. 김 판사- 박 검사의 전화가 있었던 것은 2006년 1월입니다.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습니다.
수사나 처벌의 대상이 안 되는 겁니다.

물론 나경원 전 의원과 김재호 판사는 '기소 청탁을 한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청탁을 하려면, 기소를 할만한 사안이 아닌데 기소를 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당시 "나경원 의원이 친일파 이완용의 땅을 찾아주는 소송에 변호사로 나섰다"는 네티즌의 글이 문제가 됐는데요, 해당 네티즌을 고발한 당시 사건에 대해 경찰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기소가 될 사건이었고, 그래서 기소 청탁이란 어불성설'이란게 두 사람의 주장입니다.

법관윤리강령 위반?

마지막 남은 문제입니다.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김재호 판사가 부탁한 내용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박 검사의 진술서에는 "빨리 기소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돼 있습니다. 김 판사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네티즌이 올린 글 때문에 고통이 크니 빨리 삭제하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 판사의 이런 행동이 법관윤리강령 위반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법관윤리강령에는 '타인의 재판에는 관여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죠. 나 전 의원이 김 판사의 부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타인의 재판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부인 일인데 그 정도 전화도 못하냐는 시각도 있죠.

어쨌든 경찰 수사는 마무리 됐고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습니다. 법원도 법관윤리강령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을 요구받을 겁니다. 현직 판사와 검사가 관련된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과 법원이 앞으로 어떤 마무리를 할지가 제게는 남은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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