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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은 정기예금?

퇴직연금은 정기예금?

퇴직금은 샐러리맨들에게는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1년에 한달치 급여를 적립하는 퇴직금은 퇴직시에 목돈으로 돌아와 노후 생활을 위한 소중한 종잣돈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퇴직금 중간 정산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런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퇴직전에 미리 사용하게 됐습니다. 보험개발원 조사를 보면 퇴직금 중간을 한 사람들의 정산금 사용처는 자녀교육비 26.7%, 부동산 구입이나 주식투자 23.3%등이었고 나름대로 노후 준비를 하기 위해 중간 정산을 한 경우는 6.7%에 불과했습니다.

정부는 이에따라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2008년에 퇴직연금 적립액이 6.6조원 이었지만 2010년에는 29조원, 올1월에는 50조원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가입자도 340만명을 넘어서 전체 근로자의 37%가 퇴직연금에 가입했습니다. 올해 7월부터 퇴직금 중간정산이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도록 제도가 바뀌고 각종 세제상의 혜택이나 불이익으로 유도하면 퇴직연금 가입자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사실 퇴직금은 '후불임금'입니다. 자신이 받아야할 임금의 일부를 떼어 놓았다가 퇴직시 목돈으로 받는거죠. 이 제도의 장점은 퇴직시 개인사업을 위한 종잣돈이나, 갑작스런 개인적인 불행등에 대비해 목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분별한 중간정산으로 노후 보장으로써의 기능은 물론이고 목돈으로써의 기능도 거의상실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다가오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것은 필요해 보입니다.

퇴직연금은 DB형과 DC형이 있습니다. 회사 외부에 퇴직연금 적립금을 쌓아놓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운영을 회사가 하느냐, 본인이 하느냐가 차이점입니다. 2005년 퇴직연금제 도입당시에는 DB형과 DC형의 비율이 39% 대 37%로 거의 비슷했는데 지금은 사실상 회사가 운용하고 정해진 퇴직연금액을 주는 DB형이 74.6%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적립금의 운용방법도 매우 보수적입니다. 원리금을 보장하는 상품이 46.5조원으로 93%를 차지하고 있고 실적배당형 상품은 2.9조원에 불과합니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 가운데서도 예적금은 비중은 62.7%나 됩니다. 퇴직연금의 규모가 증가하고 있지만 투자상품의 비중은 늘어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수익성 보다는 안정성 위주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퇴직연금 상품 설명회도 많이 참석했고, 노후대비를 위한 각종 강연회도 많이 취재했습니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현재 은행금리는 물가상승률 보다도 못하고, 따라서 "노후 대비로 자산을 은행에 예금형태로 맡기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각종 투자형 상품의 빛나는 수익률도 많이 보았고 이런 상품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그리고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좋은 투자 상품을 포기하고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사실상 마이너스인 은행 예적금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직연금은 입사 부터 시작해 퇴직시까기 계속되는 장기적인 상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금융기관에서는 이런 장기 상품에 대해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운용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청난 수수료도 물론 챙깁니다. 이미 개인연금에 가입하신 분들은 이런 사실을 실감하셨을 겁니다.

정부는 퇴직연금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각종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아직도 퇴직연금이 과거의 퇴직금 제도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내가 모은 돈을 내맘대로 목돈으로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저항감이 있는데다, 돈을 금융기관에 맡겨봐야 내가 운용하는 것 보다 못한 수익률을 내고 있는데 누가 퇴직연금을 좋아하겠습니까?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세제 혜택이나 다른 제도적 장치 보다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 행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과도한 운용수수료나 무분별한 투자등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퇴직하는 모든 사람들이 퇴직금만도 못한 퇴직연금을 받으며 이 제도를 도입한 사람들을 비난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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