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급하게 느껴지는 제보를 하나 받았습니다. ‘난방비가 무려 94만 원이나 나왔다’는데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황당했습니다. ‘신혼부부 두 명이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난방비가 94만 원이나 나올 수 있을까?’
제보자 말대로 난방비가 94만 원이 나온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94만 원’이 한 달 난방비가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덜 낸 난방비가 한꺼번에 청구된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난방비 폭탄을 맞은 제보자는 물론 취재하는 저도 매우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난방기 계량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10편이 넘는 논문을 찾아 공부하고, 여러 명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은 끝에 중앙난방식 아파트의 계량기가 문제의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잠시 배경지식을 설명드리자면 ‘중앙난방식’ 아파트에선 온수를 이용해 난방을 합니다. 이 온수는 주로 지역난방공사에서 공급받습니다. (일부 아파트 단지는 자체적으로 물을 가열해 공급하는 구조입니다) 어느 경우든 난방비는 ‘아파트 단지’ 단위로 매겨집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아파트 단지 전체의 난방비를 각 가정이 사용한 비율로 나눠서 난방비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난방공사에서 아파트 단지로 공급된 온수는 다시 작은 배수관을 타고 각 가정으로 들어갑니다. 이 배수관은 주로 싱크대 밑이나 거실, 방 안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배관에 달린 계량기(내부 계량기)에서 각 가정에서의 온수 사용량을 측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배관이 집 안 깊숙히 들어가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 이 배관에 달린 계량기를 매달 점검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온수 사용량을 쉽게 확인하기 위해 현관 문 밖에 별도의 작은 계량기(외부 계량기)를 달아서 내부 계량기가 측정한 온수 사용량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내부 계량기가 측정한 온수 사용량을 밖에 달린 외부 계량기로 전달해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에선 이 외부 계량기에 표시된 값을 토대로 난방비를 부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외부 계량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외부 계량기는 회사별로 종류도 다양한데,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숫자가 돌아가는 낡은 아날로그식 계량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계량기는 집안에 있는 계량기가 보낸 신호를 정확하게 수신하지 못하고, 대게 더 적은 수치를 표시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느 가정에서 실제로는 10톤의 온수를 사용했는데, 외부 계량기에는 7톤을 쓴 것으로 표시되는 것입니다.
앞서 난방비는 아파트 단지 전체의 난방비를 각 가정에서 사용한 비율대로 나눠 부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파트 단지 전체의 난방비 총액은 변함이 없는데, 어느 가정에서 실제 사용량보다 적게 내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나머지 가정에서 그 차액만큼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제보자의 사례로 다시 돌아가 보면, 제보자 가정의 외부 계량기가 3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94만 원을 적게 냈던 것입니다. 이를 관리사무소가 우연한 기회에 발견했고, 덜낸 금액 94만 원을 한꺼번에 부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보자가 3년 동안 덜낸 94만 원을 다른 가정들이 나눠 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한마디로 고장 난 남의 집 계량기 때문에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내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량기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중앙난방식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300만 가구에 이릅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표본조사 결과, 이런 아파트의 약 20%인 60만 가구의 외부 계량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금액으로만 1,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매년20%의 가정이 적게 낸 1,800억 원이라는 거액을 나머지 80%가 대신 내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계량기와 관련된 모든 책임이 바로 ‘집주인’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행 ‘계량에 관란 법률’에는 계량기는 사용자(집주인)가 5년마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를 받고 문제가 있을 경우 교체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대로라면 94만 원의 난방비 폭탄을 맞은 제보자는 계량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책임까지 물어 천만 원의 벌금을 더 내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우리 집에 계량기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계량기가 두 개인지 한 개 인지 전혀 모르고 사는데 그걸 어떻게 알어?” 이렇게 말씀하실 분들이 대부분이실 겁니다. 그리고 난방비가 청구되는 대로 별 의심없이 돈을 내고 계실 겁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 조차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 국토부로부터 계량기 관리에 대한 책임을 위임 받은 각 지차체도 모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계량기 사용자가 책임지고 5년에 한번씩 계량기를 점검하고 고치는 게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계량기를 점검하지 않았다고 각 가정에 천만 원씩의 벌금을 물릴 수 있을까요? 전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앙난방식 아파트의 경우, 계량기 관리책임을 전문성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넘겨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책임지고 각 가정에 달린 계량기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작동은 제대로 하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게 해야 하는 게 현실적으로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될 경우 관리비가 조금 더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용한 만큼 정확하게 난방비를 낼 수는 있게 될 것입니다.
뉴스가 나가고 난 뒤, 제보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경우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이 제가 말씀 드렸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답을 드릴 수 있는 답변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출입하고 있는 서울시에서는 특별반(T/F)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몇몇 지자체들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지금 여러분 아파트의 계량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요? 궁금하시면 지금 한번 확인해 보시죠. 계량기를 언제 교체했는지, 과연 내가 사용한 만큼 계량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관리사무소에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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