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네, 최 기자. 독립만세운동은 3월 1일인데, 용인에서는 왜 3.21만세라고 하는지 궁금하네요.
<기자>
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같은 의사소통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정보 전달이 늦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용보시죠.
도로망이 지금같지 않았던 당시에는 서울에서 용인까지 가는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돼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제의 탄압속에 만세운동 소식이 지방으로 전달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류성희/용인 항일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 : 서울서 용인까지 3월달에 초순에는 연락이 안되니까 소문이 소문에 소문을 타서 3월 21일 원삼 장날을 기해서 만세운동이 전개 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이 용인에 전달되는데 20일 가까이 걸린 셈입니다.
용인 3.21 만세운동 재연행사에 앞서 전통 무용가 정기옥씨가 진혼무를 펼쳤습니다.
참석자들은 기념탑에 헌화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수도권] 인터넷 없던 시절, 용인에선 3.21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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