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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근저당 설정비 돌려달라는 소비자

은행들의 '꼼수'

근저당 설정비 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같은 담보대출을 받으신 분들이 모두 부담했을 돈인데 담보 설정에 드는 수수료와 세금 등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동안 근저당 설정비는 사실상 고객이 모두 부담했습니다. 은행들은 고객이 부담할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며 고객이 내도록 했습니다. 은행이 이 비용을 부담하게 되면 대출이자에 평균 0.1~0.2%씩을 더 붙여서 이자를 받고, 중도 상환수수료도 고객에게 부담시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3년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가 대출에 있어서 우월적 지위의 은행이 고객에게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약관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2008년 공정위는 근저당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도록 하는 표준 약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은행이 대출을 해 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데 은행들의 필요해 의해서 담보를 설정하는 비용을 왜 고객이 내느냐는 이유입니다. 은행들은 이 약관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지난해 10월 은행들이 패소하는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은행들은 소송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전세계적으로 금융권 탐욕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국내적으로도 ‘상생’ 드라이브가 걸리자, 지난해 7월 협회 차원에서 앞으로는 근저당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은행들이 이를 부담합니다.

하지만 은행들이 공정위 조치에 반발하며 대법원에서 패소할 때까지 받은 근저당 설정비 규모만 3조 7천억 원입니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과거 받았던 근저당 설정비를 고객에게 돌려달라는 집단 소송을 냈습니다. 소송 청구인 단 모집도 계속됐고 국가기관인 소비자원까지 나서 지난달 22일부터 집단 소송을 위한 피해구제 접수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원에 집단 소송 접수를 하려면 대출거래약정서, 근저당 설정비 영수증, 근저당 설정 계약서 등을 은행에서 발급 받아야 하는데 은행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서 소송을 내려는 고객들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취재 중에 만난 소비자들은 은행이 고압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심지어 일부 은행은 공문으로 협조를 해 주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다는 말도 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은행에 서류가 없다” “그 소송 내 봐야 몇 년 걸릴 것이고 이기지도 못할 텐데 왜 내냐?” “은행이 설정비 부담을 했는데 왜 서류 달라고 하느냐”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원에 집단 소송을 내려고 상담한 건수는 보름 만에 2만 2천 건을 넘어섰지만 실제 소송 청구인에 포함되는 피해구제 대상에 오른 사례는 900여건에 불과합니다.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소비자원도 은행들의 이런 대응을 알고 있지만, 강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 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감독 당국은 소급해서 설정비를 반환하라는 재판이 진행 중인만큼 일단은 지켜보자며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은행들이 5년 넘은 서류는 지점에 보관해 두지 않고 다른 저장소에 두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기록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스캔을 떠서 전자문서로 보관하죠. 대출 거래약정서는 있는데 근저당 설정 계약서와 영수증은 없다는 은행, 설정비 부담은 은행이 했다면서 가산금리를 얼마나 부과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는 은행, 모두 목적은 하나로 추정됩니다. 바로 집단 소송의 청구인을 줄이려는 겁니다. 소멸시효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행되는 집단 소송 가운데 소비자원이 지원하는 것은 고객이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했을 경우만 포함되지만, 금융소비자연맹이라는 시민단체가 접수 받고 있는 대상은 은행이 설정비를 부담하면서 부과된 가산금리도 사실상 고객 부담이니 이를 반환해 달라는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만 무한정 소급해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채권 소멸시효인 10년을 기준으로 역산해 2003년 이후 담보 대출을 받은 분들만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대상자가 200만명, 은행이 돌려줘야 할 반환 규모는 10조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지금 먼저 진행되고 있는 근저당 설정비 반환 관련 집단 소송 진행 상황을 들어보면 은행 측이 재판을 가급적 길게 끌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집단 소송의 청구인을 가급적 줄이려는 것과 같은 이유인데, 이렇게 해야 설사 재판에서 은행 측이 져도 보상해 주는 대상자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집단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은 재판에 이길 경우 은행에서 근저당 설정비를 소급해 돌려줘야 하지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더욱이 대법원 확정판결이 오래 걸려서 3~4년 뒤에 난다고 하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 10년 간만 시효 적용이 되기 때문에 결국 설정비를 돌려줘야 할 대상은 줄어듭니다.

당연히 은행들은 소송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근저당 설정비와 관련한 계약은 고객들이 동의한 상태에서 체결된 것인데 소급해서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최근 공정위와 소비자원에 접수된 근저당 설정비 관련 과거 사례들에서는 잇따라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실제 소급해서 돌려달라는 재판에서도 소급 기간을 얼마나 적용하느냐가 문제지 결론은 은행 측이 불리할 것으로 보는 법조계의 시각이 더 많습니다.

자신이 낸 돈을 돌려받을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소비자들, 특히 대부분 금융지식이 많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국가기관까지 나서서 지원하는 소송 관련 서류 발급을 거부하는 은행의 태도, 아무리 봐도 지나친 ‘꼼수’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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