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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법정스님을 만나고 실망했던 기억

병풍 뒤에서 진행한 기이한 의식…그리고 스님의 말씀

기대가 컸습니다. 책을 통해 말씀만을 전해 듣던 큰 스님, 법정을 직접 뵌다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입적하기 2년 전인, 2008년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법당에 들어선 스님은 병풍으로 막혀 신도들은 볼 수 없는 곳에서 무슨 의식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도들은 볼 수 없는 그 병풍 뒤를, 기자라는 신분 덕에 몰래 훔쳐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물건들이 보였습니다.  붓, 솔가지, 팥….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걸까요? 스님은 그곳에서 팥을 던지고, 솔가지로 물을 뿌리고, 붓으로 부처의 눈에 점을 찍는 시늉을 하고 있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책에서 느꼈던 법정스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뛰어넘는 보편적 이성과 합리성을 보여주던 그 법정 스님이… 마치 무속신앙의 무당이 할 법한 기이한 의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바로 실망이었습니다. 스님도 결국 종교적 의식을 진행하는 제사장 비슷한 역할을 하시는구나…. 충격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멍한 심정으로 스님을 바라보는 사이…

병풍이 걷히고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스님께서 자신이 병풍 뒤에서 한 일을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한 무속 신앙 같은 행위가 처음에는 스스로도 참 거부감이 들었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 어떻게 된 일이지? 스님께서는 마치 제 마음 속에 들어오신 것처럼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설명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비록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전통을 가진 의식이 가지는 역할과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그 순간, 묵직한 둔기로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내면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한쪽 면만 보고 살았구나…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의 역사가 있고… 그것 역시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구나… 하는 깨달음 이었습니다. 큰 스님을 만난 어느 봄날 오전, 평생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할 수 있는 큰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시지요.

“아까 내가 병풍 뒤에서 무슨 수작을 했는데… 나는 이 점안식 할 때마다 속으로 웃으면서 모든…, 뭐… 불교 뿐만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의식에는 무속적인 요소가 있다고, 그 나름의 다 의미가 있어요. 이 팥을 던져요, 잡귀들 이제 몰아낸다는 거지요, 또 이제 붓에다가 먹을 찍어가지고 부처님 눈동자에다가 점을 찍는 시늉을 하고, 또 이제 솔가지 가지고 물을 뿌리고 그래요. 다른 종교도 비슷한 그런 의식은 다 있습니다. 약간 무속적이긴 하지만은 이렇게 합리적이고 닳아지는 세상에 이런 요소라도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여겨져요. 저도 처음에는 풋중 시절엔 이런 걸 보고 아주 저항을 했는데, 아 이거 불교도 무속이구나 했는데, 아 지금 와서 보니까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대상 자체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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