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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앞치마 두른 할아버지, 요리에 빠지다

요리를 알면 노후가 행복해요

올해 75세인 신 모 할아버지는 요즘 신바람이 났습니다. 신 할아버지는 충남 공주에서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는데요,최근 요리 재미에 푹 빠진것입니다. 지난달 초 시작한 요리공부가 할아버지의 일상을 확 바꾸어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 중 화요일과 목요일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말합니다.자치단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할아버지 요리교실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15일 공주시내 한 요리전문학원을 찾아갔습니다. 신할아버지 또래의 남성 노인 들이 교육시간에 맞춰 하나.둘씩 들어왔습니다. 요리를 배우러 오는 할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밝고 활기찬 얼굴이었습니다. 어색하고 쑥스런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죠.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까지 쓴 모습이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요리를 배운지 5주째라 그런지 조리대에서 펼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요리강습 마지막주, 할아버지들이 도전할 메뉴는 잡채와 바비큐 폭찹. 도마위에 마늘과 파를 놓고 잘게 다지는 칼솜씨에선 경쾌한 리듬마저 묻어났습니다. 후라이팬에 재료를 볶고 양념을 치면서 배운대로 따라하는 요리지만 할아버지들만의 손맛을 내기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손으로 잡채 두세가닥을 집어 간을 보는 과정도 여느 주부와 다를바 없었습니다. 특히 요리강습 내내 할아버지들의 태도가 아주 진지하고 적극적이며 재미있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요리교실은 홀로 살거나 부인과 단 둘이 사는 할아버지들이 음식을 만들지 못해 끼니를 거를 수 있고 자칫 건강을 해칠 까 걱정돼 남성 어르신들에게 식사해결능력을 길러주기위해 공주시가 올해 처음 실시한것입니다. 지난달 13일 시작한 요리강좌는 오는 5월4일까지 주2회,6시간씩 진행됩니다. 요리 배우기 삼매경에 빠진 어르신들은 40여명이나됩니다. 

어르신들이 배우는 요리는 찌개,비빔밥,닭찜,탕수육,각종 밑반찬 등 30여가지. 요리학원 강사는 할아버지들이 편하고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생활요리 위주로 메뉴를 짰다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들은 이론강의부터 실습까지 한눈 팔지않고 꼼꼼하게 배우고있습니다. 요리를 하다가 필요한 재료가 생각나지않거나 양념치는 순서를 잊으면 대충 생각대로 하지않고 곧장 메모장을 꺼내 보는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요리를 배우는 동기는 제 각각이었지만 대부분 함께사는 부인에 대한 애정이 가장 컸습니다. 할아버지들의 로맨스마저 느껴졌는데요, 이구동성으로 부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자신들을 위해 밥을 해줬으니 이제는 그 고마움에 보답을 위해서라도 할아버지들이 부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는 뜻입니다.

             


또 병석에 누운 할머니를 봉양하기위해 요리를 배운다는 한 할아버지 사연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결혼한지 50년동안 늘 가족 뒷바라지만하던 아내가 최근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쪽 손발을 사용할수없게 됐다는 이 할아버지는 자녀들이나 남에게 의존하지않고 자신이 손수 밥을짓고 반찬을 해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요리학원에서 만든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할아버지들이 상당수였습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힘이나 더 열심히 요리를 배우게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이들면 부부사이에 할말도 별로없고 사소한일로 감정이 상해 말다툼을 하기가 일쑤인데 요리가 노부부의 금슬을 더 좋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할아버지들은 생각했습니다.

홀로사는 노인들도 먹고 싶은 요리를 바로 바로 만들어 먹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고 말합니다. 요리를 배우기 전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나 봉사단체에서 주기적으로 해오는 반찬에 의존해 식사를 해결했던것과 비교하면 몸은 좀 피곤해도 입맛에 맛는 음식을 먹는다는게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고추장,된장,혹은 김치,라면으로 대충대충 한끼 때우다보면 불충분한 영양 공급으로 건강을 해치기 쉬운데 요리를 배우면서 이같은 걱정도 한방에 해결한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들어간 할아버지의 모습. 하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꿈꾸는 이들에겐 체면 따윈 더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칫 무기력하고 매사에 흥미를 잃을수도 있는 황혼기를 요리가 활기차고 우아하게 바꾸어놓은것입니다. 노후준비에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생활내내 자취한 경험에 요리학원 신세를 지지 않아도 웬만큼 해결 능력을 쌓았다는게 참 다행입니다. 주말에 가끔씩 아내와아이들에게 해주던 찌깨와 볶음요리를 이제 부터라도 좀 더 자주해야 겠습니다. 즐거운 노후를 꿈꾸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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