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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농어촌 여성들 원정출산 가는 곳은?

[취재파일] 농어촌 여성들 원정출산 가는 곳은?
농어촌 여성, 산부인과 없어 인근 도시로 원정출산

충청북도 보은군.  대추로 유명한 인구 3만의 이 작은 농촌엔 산부인과가 단 1곳 있습니다.  건물 유리창엔 산부인과라고 적혀 있지만 이 병원은 xx여성의원이란 상호를 씁니다.  분만 시설 없이 간단한 부인과 진료만 하는 의원이었습니다.  의원 간호사는 "애를 낳을 수는 없고, 애 낳으러 옥천이나 대전으로 갈 때까지 간단한 진찰만 된다"고 말했습니다. 충북 보은에는 한국 농촌으로 시집온 다문화 여성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녀를 보통 2명 이상 두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아이를 낳으러 가는 고통 또한 큽니다.  산부인과가 없다보니 인근 옥천이나 대전 등으로 원정출산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교통편도 불편한데 퉁퉁 부은 다리로 1~2시간씩 이동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보은군처럼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54곳에 달합니다.  부산 강서구, 경기 과천시, 연천군 등 세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군단위 이하의 농어촌 지역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정의하는 분만 취약지란 분만 가능한 병원으로부터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지역이 시.군.구 면적의 30% 이상일 때를 말합니다.  지난해에는 전남 고흥군, 해남군, 완도군, 경북 영천시가 분만 취약지로 추가됐습니다. OECD 국가 가운데 합계 출산율 꼴찌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산부인과 기피 현상 왜?

그렇다면 왜 농어촌엔 산부인과가 없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해봤자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농어촌에 새로운 젊은층의 유입이 줄어들면서 도시보다 신생아 수가 적어진겁니다.  게다가 산부인과는 의료사고에 휩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현지 의사들의 전언입니다. 애를 받다 의료사고라도 나면 의사들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데 소송을 당하면 수억원을 배상해줘야 하니 차라리 애를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충북 영동 지역 병원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자신도 피부과에서 4~5년 점빼다가 산부인과 병원이 생겨 초빙돼 왔는데, 24시간 대기하는 특성상 혼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또 출산시 하혈이 심할 경우 혈액을 충분히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데 개인병원은 혈액 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토로했습니다. 결국 농어촌에 산부인과를 여는 의사가 있다면 망할 것을 각오하거나 자선사업을 해야하는 처지인 셈입니다. 이 산부인과 의사는 병원비 상한제인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그나마 남은 산부인과도 없어져야할 판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의료 인력난 또한 농어촌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간호사 등을 뽑아놓으면 도시로 이탈하고 젊은 간호사들은 농어촌을 기피하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합니다.  

                      


충북 영동군의 실험…국가·지자체가 반반씩 보조해 산부인과 개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충북 영동군 등에서 작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매칭펀드 방식으로 산부인과 개설을 지원하는 겁니다. 지난해 산부인과를 개설한 충북영동병원에는 최근 신생아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지난해 7월 산부인과 개설 이후 분만 건수가 24건에 불과했는데 차츰 늘어 올 1월에 7건, 2월에 8건, 3월에 4건 등 도시로 원정출산을 가던 주민들이 지역 병원으로 다시 되돌아온 겁니다. 이 병원은 한달에 한번씩 지역 주민을 인근 보건지소로 초청해 '무료 산부인과 진료'도 봐주는데 호응도가 매우 좋았습니다. 기자가 찾아간 당일도 추풍령 보건지소에 산모를 비롯한 여성들이 초음파 진료 등의 검진을 무료로 받고 있었습니다. 영동병원 산부인과 황해봉 원장은 "농어촌 지역 여성의 경우 병원이 멀고 농번기 때 일손이 모자라 진료를 받기 힘이드는데, 이렇게 무료 이동 진료 서비스를 해주면 매우 좋아한다"며 "그럼에도 농어촌 여성의 산후 합병증 발생율이 도시보다 25% 가량 높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올해도 영동군처럼 분만 취약지에 산부인과를 개설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지원대상 네 곳을 선정했습니다.  경북 영천시와 울진군에는 산부인과 개설 지원을, 강원도 영월군과 경남 합천군에는 산부인과 외래 지원을 한다는 겁니다. 시설 장비비로 첫해에 10억원을 지원하고 매년 5억원씩 운영비를 지급하는 조건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분만 취약지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했습니다. 농어촌의 의료.복지 서비스 향상은 저출산 문제와  도시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귀농, 귀촌이 트렌드라지만 이들이 의료·복지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언제 다시 도시로 되돌아올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정부의 귀농 대책에는 반드시 의료, 보육, 교육 등의 대책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도시로 엑소더스 하는 탈귀농 현상이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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