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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휴대전화로…"가만히 앉아 월 천만원 수입"?

다단계로 번지는 휴대폰 딜러

집에서 다리 뻗고 일하면서 수백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직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라도 당장 하고 싶다고 손부터 들 것 같은데요. 요즘 인터넷에서 나돌고 있는 재택근무 직업 가운데 ‘휴대폰 딜러’라고 들어보셨나요? 말 그대로 휴대폰을 가지고 중개업을 하는 것이죠. 휴대폰을 새로 가입하겠다는 사람을 데려오거나 가입서를 받아오면 판매점으로부터 건 당 수십만 원의 수수료를 받는 거죠.

이 휴대폰 딜러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면 정말 화려합니다. ‘한 대당 48만 원’ ‘집에서 편안히 돈 버세요’ ‘고소득의 지름길’ ‘자본금 제로’처럼 솔깃한 문구로 가득한 내용과 함께 휴대폰 딜러를 모집하는 사이트가 한 둘이 아닙니다. 핸드폰 딜러로 일하면서 한 달에 2000만 원 가까운 순수익을 올린 회원의 실적표를 올린 경우도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이 정도 벌 수 있다는데 누구나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겠죠.

이런 달콤한 유혹에는 언제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휴대폰 딜러’도 마찬가지죠. 휴대폰 딜러를 모집한다는 곳을 가봤습니다. 일반 판매점이 아닌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내고 개인이 판매점 형태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1시간 정도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에는 딜러로 일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1시간은 어느 기종을 개통할 경우 얼마의 수수료가 나오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고수익을 올린 딜러의 영웅담이 대부분입니다. 황금빛 청사진을 쫙 펼쳐놓은 뒤 딜러가 되기 위한 조건을 답니다. 다름 아니라 최신 LTE폰을 개통해야 한다는 것이죠.

딜러가 되면 여기저기 전화할 곳도 많고 또 상담을 할 경우 딜러가 최신 전화기를 가지고 있어야 제품 설명도 쉽고 고객에게 신뢰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2~3년의 약정으로 매달 기기 값이 포함된 사용요금만 내면 되니 부담도 적다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꼼수가 숨어 있습니다.

딜러가 가입자를 소개해주고 받는 수수료가 어떻게 나오는지부터 살펴보죠. 판매점이 최신 LTE폰 가입자를 유치하면 대략 30~40만 원의 리베이트 수익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휴대폰 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이는 요즘 이 리베이트를 자기 주머니에 다 넣는 판매점은 거의 없습니다. 판매점은 자신의 리베이트를 쪼개서 보조금을 명목으로 20~30만원의 현금을 가입자에게 돌려줍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가입자를 유치하겠다는 거죠. 휴대폰 판매점 유리창에 붙인 ‘현금지급’이라는 글은 바로 이런 뜻에서 나온 겁니다.

딜러가 가입자를 소개해주고 받는 수수료는 다름 아니라 고객이 판매점에서 휴대폰을 개통했을 때 받는 보조금인 겁니다. 고객이 받아야 할 보조금을 딜러가 중간에 챙기는 꼴이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판매점에서 직접 개통하는 것보다 20~30만 원은 비싼 휴대폰을 딜러에게 제값을 다 주고 살 소비자는 거의 없겠죠. 딜러는 처음엔 가족이라도 끌어들여서 고객을 유치하겠지만 결국에 많아야 서너 명이지 한 명도 데려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입니다.

결국 딜러는 단지 최신 LTE폰 가입자에 그치는 게 되고 맙니다. 수익도 올리지 못하면서 2.3년 약정에 묶여 매달 10만 원 가까운 요금에 시달리게 되는 꼴입니다. 판매점은 딜러에게 휴대폰을 팔았으니 손해 볼 게 없는 건 당연하고요. 대부분 딜러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돈이 부족한 대학생이나 판매 시스템을 잘 모르는 중장년층 주부이기에 문제가 더 큽니다.

제가 만난 대학생도 이런 달콤한 말에 속아 휴대폰 딜러가 됐다가 최신 LTE폰만 산 경우였습니다. 비싸고 조건도 좋지 않은데 자신을 통해 휴대폰을 살 사람이 없더라는 거죠. 요즘 LTE폰은 한 달에 9만 원의 요금을 내야 하는데 약정에 묶여서 해약도 못하고 꼬박꼬박 매달 요금을 내느라 허덕이고 있는 신세였습니다. 뒤늦게 딜러의 실체를 알았지만 이미 해약이 가능한 2주가 지나버려 손을 쓸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딜러 밑에 딜러를 두는 다단계 형태도 등장했습니다. 딜러의 계급을 판매업, 도매업, 총판으로 구분해 놓고 상위 딜러가 하위 딜러로부터 수익의 일부를 챙기는 형태였습니다. 최대 25%까지 수익을 가져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통해서 핸드폰을 구매하면 그 사람은 내 판매업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받는 이른바 보조금의 25%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내 위에 총판은 5%를 가져가는 형식이죠. 자기 밑에 판매업이 10명이면 도매업으로 승급하고, 도매업이 또 10명이면 총판으로 승급하는 구조입니다. 이들 다단계 형태의 업체에는 목사와 전도사 같은 종교인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가 만난 한 딜러는 이런 형태의 다단계식 핸드폰 판매업체가 전국에 4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총판의 경우 수백 명의 판매원으로부터 한 달에 최소 천만 원 이상을 가만히 앉아서 벌 수 있다고 광고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업체를 다단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행법(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상 다단계로 처벌하려면 판매원 조직이 3단계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판매업에서 도매업, 도매업에서 총판으로 2단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는 8월 개정법이 시행되면 3단계 이하라도 ‘후원방문판매업체’로 분류돼 규제가 가능하게 됩니다.

한석현 YMCA 시민사회운동부 간사는 휴대폰 딜러가 될 경우 약정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LTE폰의 경우 요금제가 비싸져서 한 달에 10만 원 가까이 내야하는데 대학생이나 장년층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휴대폰 딜러라는 직업도 이른바 보조금을 악용하는 경우의 하나인 만큼 휴대전화에 낀 가격 거품부터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합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가 서로 짜고 출고가와 공급가를 속여 휴대폰 가격을 비싸게 매긴 뒤 할인해서 파는 것처럼 속여 왔다는 보도가 있었죠. 이것도 바로 보조금을 악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려 국내 통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통신사의 횡포가 사라져야 이런 달콤한 속임수도 사라질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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