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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심장마비…당신이 살아날 확률은?

24시간 철야근무를 하고 돌아 온 아침. 몸이 피곤해 금방이라도 곯아 떨어질 것 같은데 극도의 피곤함은 오히려 잠을 쫓는다. 누워서 몸을 뒤척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한 게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과로로 심장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젊은 나이에 돌연사도 많다는데…'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며칠 뒤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를 받아 '심정지 생존율 보고서' 작성한 서울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질문에 교수가 무심코 내놓은 대답은 나의 걱정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 "심정지 환자가 늘었다고요? 어떤 사람이 심정지에 걸리죠?"
- "바로 신 기자 같은 사람들이죠."

나의 불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곧 설명은 일반적인 직장인의 예로 옮겨갔다.

"심장질환이 있으면 심정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죠. 하지만 유전적 소인이나 과로, 스트레스 등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30-40대 젊은 사람들, 특히 업무 강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도 비심인성(*외상으로 인한 심정지를 제외한) 심정지 환자가 많아지고 있죠."

심장마비라고도 하는 심정지는 말 그대로 심장이 멎는 것이다. 심장이 멎으면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이 몸에 공급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뇌손상이다. 뇌는 영양분을 따로 저장해 놓지 않는다. 비상식량이 없는 것이다. 4분에서 6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시작되는데 뇌는 한 번 손상되면 기능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이른바 '비가역적 손상'이다. 그래서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응급처치가 1분 늦어질 때마다 살아날 확률이 7~10%씩 줄어든다는 미국 심장학회의 발표도 있다. 그래서 심정지 환자가 살아날 확률, 즉 '심정지 후 생존율'은 '예방가능한 사망율'과 함께 그 나라 그 지역의 응급의료체계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신상도 교수팀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심정지 후 생존율은 2010년 3.3%로 나타났다. 심정지 환자 100명이 있다면 3명만 살아난다는 거다. 그나마 뇌손상 없이 회복되는 경우는 1%에 불과하다. 참고로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19.5%, 일본 오사카는 12%, 미국 시애틀은 8.1%의 생존율을 보인다. 지난 2006년 심정지 후 생존율이 처음 조사됐을 때는 2.4%였다. 그때보다 수치가 높아졌지만 '개선됐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왜 이렇게 생존율이 낮을까. 왜 쉽게 생존율을 높이지 못할까. 한 명의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50대 A 씨가 집에서 잠을 자다 갑자기 심정지를 일으켰다고 가정하자. 다행히 가족들이 일찍 발견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119에 전화를 걸어 SOS를 치는 일 뿐이다.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가 달려 온다. 하지만 생사에 영향을 미치는 '골든타임' 4분 안에 도착할 확률은 19.7%(2010년 평균)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비율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두 명뿐이다. 한 명은 운전을 해야 한다. 깊이 5cm 이상 심장을 눌러야 하는 심폐소생술을 한 사람이 몇 분씩 계속하는 것은 무리다. 어쨌거나 가장 가까운 병원에 도착했다고 하자. 하지만 중환자를 수용할 시설과 공간이 없다고 거부당한다.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려 보라고 사정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결국 좀 떨어진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다. 이미 119 신고한 시점부터 26분(2010년 평균)이 지났다. 병원은 전기충격기와 심폐소생술을 시도해 본다. 하지만 의사의 얼굴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하다.

가족들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더라면, 119 구급대가 좀 더 빨리 왔더라면, 더 많은 구급대원이 와서 효율적인 응급처치를 했다면, 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되는 병원을 좀 더 빨리 알 수 있었다면, 병원에 더 일찍 도착했다면, 병원이 저체온 유도 같은 좀 더 적극적인 처치를 시도했더라면…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병원 전과 병원 단계에서 모든 과정이 한꺼번에 개선되지 않고서는 생존율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다.

사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암 치료나 장기이식술, 로봇 수술 같이 첨단의료나 고난이도 의료에서는 선진국 못지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응급의료 만큼은 낙후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입원 대기 환자로 복도까지 차 있고, 중증환자를 집중 치료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정말 급한 중환자는 -좀 심하게 말하면-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정부가 응급의료기금을 만들었고 5백억 원이던 기금 규모도 2010년부터 2천억 원으로 껑충 뒤었다. 여기엔 일반인 심폐소생술 교육이나 119 구급대와 응급실 개선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하지만 들인 돈에 비해 성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2010년 기준으로 심정지 환자는 2만 5천 명이 넘는다. 폐암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많다. 결코 소수의 일이 아님에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응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한 미국 애리조나대학 밴 보로우 교수의 얘기가 흥미롭다. 애리조나주는 심정지 후 생존율이 3%였는데 불과 최근 8년 만에 14%로 껑충 올랐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결과가 가능했을까. 심정지 환자 같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119 구급대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까운 소방차가 먼저 출동한다고 한다. 소방대원들도 모두 응급의료 자격이 있는 숙련된 인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심폐소생술 같은 급한 처치를 하면 전문 구급대들이-평균 8명- 도착해 그 다음 단계를 밟는 식이다.

또 하나 새로운 건, 애리조나 주 정부가 기획한 일반인 교육의 '컨셉'이다. 이 교육은 우리나라처럼 4시간의 길고 지루한, 그리고 난해하고 전문적인 강의가 아니다. '당신은 반드시 환자를 살려야 한다!'가 교육 메시지의 핵심이다.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내지는 '환자를 살리는 일에 동참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응급환자를 앞에 두었을 때 갖게 되는 두려움을 없애도록 해 줘야 한다. 복잡한 교육 대신 '심장 근처 가슴을 깊게 눌러라'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TV와 옥외 전광판, 영화관, 인터넷, 그리고 학교 정규 교육에서 끊임없이 이를 강조한다. 이런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애리조나는 짧은 기간에 미국에서도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지역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붓느냐 보다 지역사회가 합심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응급의료의 지표를 향상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전국의 의료 수준을 고르게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심정지 생존율은 6%가 넘지만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은 1%도 안 되는 곳이 허다하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대형병원이 있는지, 자치구의 재정자립도가 얼마인지에 따라 생존율이 최고 8배까지 차이가 난다. 전체 생존율을 높이는 것 못지 않게 응급의료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응급의료는 공공의료이고, '공공'의 의미는 누가, 어디에 살든, 돈이 얼마나 있든 관계없이 고른 질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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