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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남북관계…제네바와 파리의 차이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본부. 북한인권 특별 보고관의 보고가 예정돼 있던 유엔 인권이사회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송환에 반대하는 우리 국회 대표단이 참관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국내 언론 취재진들도 많았고요.

다루스만 특별 보고관의 보고가 끝나자 북한 대표가 나서서 반대 발언을 했습니다. 탈북자 강제송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서의 내용은 근거 없이 날조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북한 대표는 곧바로 회의장에서 퇴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국회대표단이 서세평 북한 대표에게 다가가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북한 대표 측은 우리 의원들을 막아 섰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진 것입니다. 보안 요원이 출동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팔목을 꺾은 채 제지하고 억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서로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북측은 우리 의원단이 일방적으로 막아서면서 몸싸움을 걸었다는 것이고, 우리 의원단 측은 항의서한만 전달하려 했는데 북한 대표단 중 일부가 의원을 발로 차고 밀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충돌 경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 쪽은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야?"라고 윽박질렀고 또 한 쪽은 "한 번 해보겠다는 거야?"라고 맞받아치는 등 양측 모두 격앙된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주장이 옳든 보안요원이 우리 국회의원의 팔목을 꺾은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유엔 회의장에서 일국의 대표 일행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달려들면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로서는 그리 낯설지 않을 수 있겠지만, 회의를 주관하는 유엔 입장에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탈북자 강제 송환은 물론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살기 어려워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을 사지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여론에 호소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유엔 회의장에서 충돌을 일으킨다고 우리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합니다. 오히려 중국에 대해 운신의 폭을 줄이는 역효과가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번 제네바 출장을 다녀오면서 우리 의원 대표단의 충정을 이해하면서도, 그 방식에 대한 아쉬움으로 착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틀 뒤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장소는 바뀌어서 파리, 프랑스 최고 권위의 클래식 전문 공연장 살 플레옐에서였습니다. 1,9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북한의 은하수 관현악단과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합동 연주에 감동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하모니의 주인공은 정명훈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우여곡절 끝에 형식적으로는 북한과 프랑스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과 남한의 공동연주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남북 관현악단의 공동 연주를 추진하던 정명훈 선생은 정치적인 장벽에 가로막히자, 북한 교향악단을 파리로 불러 연주를 하는 편법을 통해 남북 화해의 징검다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번에 파리를 방문한 북한의 은하수 관현악단은 90명입니다. 소해금과 가야금 등 전통악기 연주자 20명을 포함해 모두 북한 내 최고 실력자들이라고 합니다. 김정은 체제 이후 만들어져서, 김정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세대여서 그런지 단원들 모두 활달하고 다정했습니다. 남한의 언론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예상과 달리 기꺼이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관객들 역시 처음에는 북한이라는 생소한 곳에서 온 연주자들이라는 생각이었겠지만, 곧바로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서양악기와 고유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배합 관현악'의 새로운 세계를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앵콜곡으로 준비된 ‘아리랑’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대표음악 아리랑은, 비록 절반이 프랑스 악단이긴 하지만 정명훈 선생의 지휘를 통해 감동이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습니다. 제네바와 파리, 그리 멀지 않은 두 곳에서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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