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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추억 속으로…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변신

예전 학창시절 웬만큼 사는 친구들 집에 가면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이 있습니다. 창작과 비평, 한국 문학전집, 세계 문학전집 같은 장서들 말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붙일 수 있는 게 백과사전일텐데요, 백과사전의 대명사 하면 브리태니커 아니었나 싶습니다. 책장을 열면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나라와 세상은 물론 상식으로 가득찬 지식의 보고 같았습니다.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그 시절에는 백과사전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백과사전에 관한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를 오늘 발견했습니다. 바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이야기였습니다. 더 이상 인쇄본은 만들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인터넷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기사이긴 했습니다만, 종이책의 종말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발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브리태니커 회사 대표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더 이상 인쇄본을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은 지금 같은 새로운 시대를 지나는 통과의례입니다. 어떤 분들은 슬퍼하시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분들은 향수에 젖기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웹사이트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우리 백과사전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글자나 그림으로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동영상을 비롯해 멀티미디어 소스로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결정이 위키피디아(인터넷 백과사전)나 구글과 상관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 못지 않게 인터넷을 통해 점점 많은 지식을 팔고 있는 상황이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사실 지난 몇년 동안 인쇄본 판매실적이 대단히 저조했습니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실제로 32권으로 구성돼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990년에 12만 질이 팔린 것을 정점으로 해마다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불과 6년 뒤에는 3분의 1인 4만 질밖에 팔리지 않았습니다. 2010년 판은 겨우 8천 질에 그쳤습니다. 이 때까지 브리태니커측의 판매는 영업사원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고,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큰 영업장에 가서 부딪치고,그러면서 동료들과 경쟁하는 영업사원들의 능력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이 20대 중반 작은 사업에 실패한 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업사원으로 취직해 전 세계에서 이 백과사전을 가장 많이 팔았던 기록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다시 오늘 발표로 돌아가 브리태니커 측은 1970년대에 이미 온라인을 통한 정보 판매를(지금의 네이버, 구글이 제공하는 일종의 지식검색)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89년에는 처음으로 CD 제품을 내놓았고, 1994년부터 온라인 정보 판매를 병행해 왔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인쇄본 판매가 브리태니커 측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가 채 안 된다고 합니다. 85%는 수학과 과학 참고서, 영어 교본 판매 수입이라고 하고, 15%는 온라인 정보 검색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미국에서만 50만 가구가 1년에 70달러를 내고 온라인으로 브리태니커를 구독하고 있답니다. 한달에 1.99달러의 비용을 지불하면 스마트폰 앱으로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기사 중에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브리태니커의 오랜 역사였습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경우는 "244년만에 더 이상 브리태니커가 인쇄본을 찍기로 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달기도 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768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처음 출판됐다고 합니다. 초판은 3권이었지만, 이후 계속 찍어내면서 내용도 보완되고 책수도 늘어나 2백 년 이상 세계 백과사전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는 거죠. 1920년에 미국 시카고에 있는 시어즈사가 브리태니커를 인수해 1936년부터 매년 개정, 발행해 왔습니다.

브리태니커가 세상에 나올 즈음, 이런 종류의 백과사전을 펴내는 것을 당시 유럽의 집권자들은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프랑스에서 몽테스키외와 루소를 비롯한 백과전서파 사람들이 기고해서 만들어진 백과전서 두 권이 1751년에 발간됐지만 이듬해 발행금지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식은 상류층들만이 독점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겠죠. SBS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을 만들려던 세종대왕에게 "무지한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고 정보를 알게 되면 그 이후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느냐"고 따져묻던 밀본의 3대 본원 정기준의 주장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브리태니커의 현 대표도 이 부분에 촛점을 맞춰 브리태니커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두웠던 시절 브리태니커가 지식을 갈망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출판물 형태로 적절하고 생생한 정보들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그 것이 오늘의 브리태니커를 만들었습니다."

자, 이제 온라인에 집중하겠다는 브리태니커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미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위키피디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11년 전에 정보 제공을 시작한 위키피디아는 전문가들의 권위로 만들었던 백과사전을 수많은 대중의 지혜로 대체한다는 색다른 접근 방법으로 인터넷 이용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수십만 명이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된 정보만 4백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브리태니커가 눈길도 주지 않았던 대중문화에 관련된 내용도 위키피디아는 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온라인 브리태니커는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즉,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신뢰에 기대하겠다는 거죠. 대표의 얘기입니다. "우리와 위키피디아는 서 있는 자리가 완전히 다릅니다. 브리태니커는 더 작아질 겁니다. 모든 만화 주인공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유명 연예인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을 알고 싶어할 때 사람들은 브리태니커를 찾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브리태니커는 더 커질 수는 없지만, 언제나 틀리지 않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정확성과 신뢰성에 향후 전략의 촛점을 맞추겠다는 얘기인데요, 브리태니커 측이 신경써야 할 자료가 하나 있더군요. 2005년 조사에 따르면 42개 항목에서 위키피디아는 각 글마다 4개의 에러가 발견됐고, 브리태니커도 3개나 됐다고 합니다. 물론 브리태니커는 아직도 이 조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긴 합니다만...

브리태니커의 오늘 발표와 관련해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기자들은 일제히 도서관 책임자들을 취재해했습니다. 백과사전을 소장하고 있고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온라인 정보검색도 누구보다 많이 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AP통신과 인터뷰한 사람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신문처럼 인쇄된 정보 소스를 이용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전자출판이 확산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정보 검색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검색은 여러가지 장점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접근하기 위한 컴퓨터같은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죠. 저 같은 경우 때로는 온라인 검색보다 백과사전이나 책으로 정보를 찾는 게 빠를 때가 많아요. 하지만 찾아야 할 정보가 많을 경우에는 온라인 검색이 편하기는 하죠. 브리태니커 얘기를 물었죠?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인쇄본은 저에게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정보소스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사가 많았던 것은 브리태니커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세대들이 현재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출판물로 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도 온라인 경매를 통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려고 내놓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최대의 경매사이트인 크랙리스트에만 오늘 현재 1만 4천 개 이상의 판매 광고가 떠있다고 합니다. 현재 브리태니커 측이 창고에 보관 중인 마지막 인쇄본은 2010년판 4천 세트라고 합니다. 이 4천 세트가 다 팔리고 나면 더 이상 책으로 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죠. 한 세트에 1천395달러라고 합니다. 전설적인 골프선수 아놀드 파머가 마스터스 대회에 관련해 얘기한 내용 등 여러가지가 추가돼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브리태티커 백과사전 인쇄본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당분간 크랙리스트에서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측이 창고에 보관 중인 마지막 2010년판 4천 세트도 빠른 속도로 팔릴 가능성이 높다고도 합니다. 기록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기를 좋아하는 미국 중산층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소장하려 할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책장에 꽂혀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훌륭한 장식품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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