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에 가면 남산이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신라시대 불국토(佛國土) 건설의 혼과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으로 백여 개의 불상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수십 곳의 절터가 남아있다. 산 전체가 문화재다. 그래서 남산은 그 자체가 사적 31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런데 이 산에 가면 문화재보다 월등히 많은 게 있다. 바로 무덤이다. 산 전체에 2만 기의 무덤이 있고, 남산국립공원 구역 안에만 3천 기의 묘가 있다. 그것도 절터, 문화재가 있는 곳이면 주변에 무덤은 꼭 있다. 명당자리라서 그렇단다. 절터나 문화재가 있는 곳에 묘를 쓰면 후손들에게 복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경주 사람들에게 정설처럼 퍼져 있다.
직접 찾아가 본 곳 중 인상적이었던 몇 곳을 소개해보겠다.
우선 창림사지. 여기는 신라시대 초기 왕궁이 있던 곳이다. 최근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절터 가운데는 3층 석탑이 있는데 벌목을 해놔서 먼발치에서도 늠름한 자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석탑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쳐놓은 철제 울타리가 있는데 그 울타리 안에 묘가 있다. 그것도 2기나 된다. 탑을 가운데 두고 관리도 안 된 묘가 2기 있다. 게다가 그 석탑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10여 기의 묘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감실부처’로 불리는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남산에 있는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198호로 지정됐다. 이 불상 때문에 골짜기 이름도 불곡(佛谷)이라 붙였을 정도로 유명한 부처다. 이 부처 옆에도 역시 묘가 있다. 여기는 땅도 경주시가 사들인 땅이다. 문화재 주변 정비작업을 하기위해 경주시가 매입했지만, 묘는 치우지 못했다. 후손들이 이장을 반대했기 때문이란다. 망자와 후손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불상과 무덤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남산뿐만이 아니었다. 경주 지역 전체에 걸쳐 문화재를 잠식한 개인 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선덕여왕릉을 오르는 길에도, 불국사를 가는 길에도 곳곳에 무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곳은 보문사지였다. 보문사라는 꽤 큰 절이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주춧돌과 흔적만 남아있다. 그런데, 절의 중심인 대웅전이 있던 자리에, 그것도 그 자리 한 가운데 묘가 들어서 있다. 누구의 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확하게 가운데를 꿰차고 있었다.
이렇게 문화재터를 차지한 개인 묘들을 치울 수는 없는 걸까?
우리나라의 장묘문화 특성상 묘지는 함부로 이장할 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아무리 남의 땅에 불법적으로 묘 자리를 만들어도 후손이나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서는 묘를 마음대로 이장할 수 없다.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문화재 보호법상 반경 100~500미터 안에 설치된 불법 구조물은 강제로 철거 또는 원상복구를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묘는 그러하지 못하다. 국가 땅이든 지자체 땅이든 가족들의 이장 허락을 얻어야 한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무연고 묘라고 해도 이장공고를 내고 1년 이상을 기다려야 이장이 가능하다.
때문에 지금도 남산에는 묘가 들어서고 있다. 남산 전체가 국가 소유 땅이 아니다보니 개인 땅에 들어서는 것까지 제한할 수 없지만, 자기 땅도 아닌 곳에 그것도 밤에 몰래 묘자리를 만들고 빠지기도 한단다. 실제로 경주 지역 부동산 몇 곳과 통화해보니 흔쾌히 남산에 묘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나섰다.
다행히 지난 해 문화재 보호구역 내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해당부처인 문화재청의 의지는 아주 미약했다. 그동안 문화재 보호구역 내 개인 묘 이장사업을 추진한 적도 없었고, 당연히 별도 예산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문화재 정비사업을 하면서 구역 안에 있는 묘가 있을 때만 정비 차원에서 이장을 추진했을 뿐이다. 그나마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 해 1억 원, 올해 2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남산국립공원 내 개인 묘 이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 3천 기 가운데 3백 기 정도 이장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화재터에 있는 민묘들은 경주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천궁녀 설화가 서린 낙화함이 있는 부여 부소산성에도 수십 기의 민묘들이 있었다. 전국의 명당자리로 불리는 문화재터 곳곳이 이렇게 개인 묘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혹자는 문화재 옆 묘들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름대로 보존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화재 터가 자손번창이라는 개인적인 욕심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황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하는 과제로 보인다.
- 에필로그 -
취재를 끝내고 난 뒤 참 묘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우연이겠지만, 분명 기묘했다. 수십 기의 무덤을 오가면서 문화재 주변 묘를 이장을 해야 한다는 아이템을 제작하고 방송이 나간 뒤 기사를 썼던 나, 같이 취재했던 카메라 기자, 그리고 일을 도왔던 스태프, 3명이 모두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그것도 방송이 나간 다음날 같은 시기였다. 서로가 아픈지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길에서 만나 서로의 병세를 확인하고선 순간 섬뜩한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혹시 이 몹쓸 감기가 다 묘 자리를 옮기라고 말한 우리를 나무라는 조상들의 벌인가?’, ‘정말 명당은 명당인가?’, ‘이거 굿이라도 해야 하나?’ 한참을 카메라 기자와 헛웃음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이기에 앞서 우리도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