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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000만원 벌려고 100억 어치 위조수표를…왜?

슈퍼노트급 위조수표의 경고

진짜 화폐와 거의 똑같이 만들어진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슈퍼노트'라고 합니다. 이 슈퍼노트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은행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결국 100달러짜리 화폐 도안을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진 슈퍼노트급 위조수표가 등장했습니다. 크기는 물론 형광물질과 패턴, 심지어 100배까지 확대해야 보이는 'check'라는 글씨도 정확하게 복제해 낸 수표였습니다. 은행원들이 사용하는 특수펜까지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전문가는 수표를 보자마자 "이건 전문가가 만든 것이다. 거의 슈퍼노트급이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한게 많았습니다. 먼저, 왜 유통이 어려운 수표를 위조했는지, 그것도 더 유통이 어려운 고액권 수표를 위조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적발된 수표는 모두 1000만 원짜리 고액 수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수표는 화폐에 비해 사용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수표는 사용하기 전에 일련번호를 꼭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액 수표인 경우 이런 확인절차는 더욱 까다롭고 철저합니다. 결국 고액권 수표를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시중에 유통시키는 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노력을 들여 고액권 위조수표를 만들었을까. 나름의 유통구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영세한 건설업자나 폐기물 업자들이 회계장부에 구멍 난 부분을 매우거나, 자금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위조수표를 산다는 겁니다. 영세한 기업들은 대부분 자금사정이 좋지 못합니다. 자연히 시중은행과 당당하게 거래를 하지 못하는 기업도 사실상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도 사업을 해야 하고 사업을 하고자 하는 파트너에게 자금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 가짜 수표들이 사용된다는 겁니다. 이만큰 회사의 자금력이 있으니 믿고 일을 줘도 된다는 협상을 할 때 사용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고, 한 증인의 전언이었습니다. 실제로 국내유통책들은 영세 사업가들에게 위조수표 10억 원어치를 300만 원에 팔려고 하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적발된 위조수표는 100억 원어치입니다. 이런식으로 팔면 일당들에게는 3000만 원이 떨어집니다. 위조수표 100억 원을 만들어 놓고 3000만 원을 벌려고 했다는 게 선뜻 수긍이 되진 않았습니다. 이 의문은 이어지는 경찰의 설명을 통해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고액권 수표가 사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은행이 영업을 하지않는 주말에 고액권 수표를 보여주면서 자금력을 과시하고 현금을 빌린다든지, 사기를 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겁니다. 이 설명은 한 사채업자와의 통화를 통해서도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조수표를 사는 걸 많이 봤다. 일부 영세한 기업들도 구멍난 자금을 매우기 위해 이런 위조수표를 사기도 한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진 않지만, 이런 위조수표가 유통되는 나름의 시장은 확실하게 형성돼 있는 건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유통된 위조수표가 단지 순간적인 기업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기에도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이런식으로 일반 시중에도 유통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220억 원이 시중에 유통될까봐 더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우리나라 수표를 외국 전문가들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번 위조수표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만든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국내 유통에만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문가도 위조수표를 보더니 단번에 이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아니라 외국에 있는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슈퍼노트의 등장 배경을 다시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슈퍼노트의 제조국으로 미국은 북한과 제 3세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슈퍼노트를 만들어서 국내에서 사용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가장 유통이 잘 되는 기축통화인 달러에, 그 중에서도 화폐단위도 가장 큰 100달러짜리 지폐는 전문적인 위조범들이 위조대상으로 삼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점점 커지면서 함께 원화가치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원화가 지급거부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원화를 가지고 세계 어디에서든 기축통화인 달러로 바꾸는것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위조수표는 달러를 만들던 외국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화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특히, 5만원 권의 등장이 더 걱정스럽게 합니다. 수표가 아닌 고액권 화폐가 나온 만큼 전문가들의 위조 대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정교한 위조수표가 나왔는데, 슈퍼노트급의 정교한 5만원 권 위조지폐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나쁜 일은 그 싹부터 잘라야 합니다. 국내 화폐와 수표는 위조도 어렵고 유통도 어렵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수표는 너무나 완벽하게 위조된 가짜가 이미 등장했습니다. 금융당국과 정보당국 등 관련 기관들은 이번 위조수표 사건이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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