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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추가 썩어가고 있다

배추 주 생산지인 전남 해남에서 배추가 썩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지난 1, 2월 겨울배추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몇 차례 전해졌지만, 최근에는 배추값이 포기 당 1800원 선으로 평년 가격을 회복해 처음에는 농민들의 말을 곧이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남군 문내면에 들어서는 순간 제 생각이 틀렸음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곳곳에서 수확도 못한 배추들이 밭에서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배추밭은 싱그러운 푸르름 대신 병약한 노란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겉잎은 물론이고, 배추 속과 뿌리까지 썩고 있었습니다.

지난 1, 2월 겨울배추 값이 포기 당 800~900원으로 평년의 2분의 1, 지난해의 4분의 1 수준까지 폭락해, 수확해봐야 인건비도 건지기 어렵게 되다 보니 농민들은 출하를 미루거나 포기했습니다. 특히 배추 가격 하락세가 지난 가을부터 지속돼 이미 김장용으로 출하됐어야 할 가을배추(월동배추)가 저장창고를 여전히 가득 채우고 있어, 겨울 배추를 넣어둘 창고마저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물론 가을배추 역시, 창고 안에서 조금씩 변질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2월 초, 갑자기 한파가 불어 닥치면서 밭에 있던 겨울배추들은 그대로 냉해를 입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배추값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농민들의 어려움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냉해를 입은 배추는 상품성이 없어 시장으로 출하되지 못하고, 포기당 백 원 정도를 받고 김치 공장에 헐값에 넘겨지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주장하는 최소 생산비가 300~400원 정도니, 포기당 200원이 넘는 적자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마저도 거래가 잘 안 되다보니, 아예 밭을 단돈 몇 만 원에 통째로 넘기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배추를 따가면서 밭에 덮어뒀던 비닐을 치워간다는 이유에 섭니다. 어차피 제대로 값을 받기는 어려우니, 밭에서 비닐을 치우는 수고라도 덜자는 겁니다. 하지만, 냉해가 심한 밭은 상인들도 꺼리다보니,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고 있습니다. 밭을 치워 다른 작물이라도 빨리 재배하기 위해섭니다.

농민들은 자식 같이 키운 배추를 손수 갈아엎는 심정이 어떻겠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수급 조절에 실패한데다가, 지난 해 물가 안정을 위해 중국에서 배추를 수입하면서 값이 하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농식품부는 지난해 배추 값이 뛰자 농민들이 앞 다퉈 재배면적을 늘린데다가, 작황이 좋아 배추가격이 폭락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보니, 해결 방안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정부 책임이 큰 만큼 정부 수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기적인 가격 안정을 위해, 수매 뒤 보관이 아닌, 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시장원리에 위배되는데다가 다른 농어가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라도 수매는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특히, 농식품부는 농협과 농촌경제연구원 등을 통해 수급상황과 전망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련 정보를 농가에 제공해왔다며 정부가 책임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농산물 값이 좋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폭락했을 때만 정부를 탓하고 수매를 요구하는 것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배추값 폭등락 문제 해결책에 대해서도 양측의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먼저,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 상하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격이 폭등할 경우에는 농민들이 상한선 이상으로 값을 올리지 않을 테니, 반대로 값이 폭락한 경우에는 가격 하한선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를 해달라는 겁니다. 정부는 앞서 지적한, 같은 이유로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최저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농협과의 '계약 재배 확대'를 대안으로 내놨습니다. 

원인과 대책에 있어서 정부와 농민들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터라, 배추 등 농산물 값의 폭등락 현상은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당장 겨울배추 가격 폭락을 경험한 농민들이 당장 봄배추 재배 면적을 지난 해보다 15% 정도 줄여, 꽃샘추위나 봄 가뭄이 오면 봄배추 값이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물론, 서민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도 양측의 시각차를 줄여 농산물 가격 안정을 이룰 수 있는 묘수가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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