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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7년의 배신' 거짓말이 낳은 비극

 5살짜리 남자아이를 유괴한 범인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유괴범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동안 가족에게 전화한통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요구사항도 없었습니다. 이 유괴범의 요구사항이 바로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경상남도 양산에 살고 있는 50살 동 모 씨는 지난 일 오후 3시 50분 쯤 서울 장위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 후문에서 놀고 있는 5살짜리 김 모 군을 발견합니다. 김군은 2살 위인 형과 형 친구들과 함께 소꼽놀이에 빠져있었습니다. 평소에 사람을 잘 따랐던 김군에 접근한 동씨는 김군에게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같이 찾으러 가자고 김군을 유인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사주겠다며 돈도 건냈습니다. 결국 아직 세상이 밝고 재밌기만 한 5살짜리 남자아이는 낯선 여인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같이 놀던 김군의 형이 낯선 여인을 따라나선 동생을 뒤따랐지만, 학교 주변 주택가 골목으로 사라진 동생을 이내 놓쳐버렸습니다. 김군을 데리고 주택가 골목을 배회하던 동씨는 미리 사둔 옷으로 갈아입히고, 택시를 타고 동네를 빠져나갔습니다. 장위동에서 명동으로 명동에서 동서울터미널로, 터미널에서 다시 대전까지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선 옥천에서 남편을 만나 남편과 함께 김군을 데리고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김군은 단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는 좋은 할머니와의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50살이 넘은 자신의 아내가 데리고 있는 어린 아이를 왜 옥천까지 마중나갔을까? 바로 7년만에 보는 자신의 아들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동씨와 동씨의 남편은 한번씩 결혼생활에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이후 서로를 만나게 됐고, 2005년 5월 당시 내연관계에 있던 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다가 지난 2005년 5월에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동씨는 이 사실을 지금의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마치 낳은 것 처럼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의 상처에 힘들었던 동씨가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동씨는 남편에게 일산에 있는 언니가 키우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출생신고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습니다. 동씨는 남편과 남편의 전처사이에서 생긴 딸 두명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이의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둘째딸이 주의력결핍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 어린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며 그동안 버텨왔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지 7년이 넘으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자 남편은 강력하게 아들을 데리고 올 것을 요구를 했고, 동씨는 점점 코너로 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입양을 신청했지만 7살이나 8살 정도 되는 아이를 입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동씨는 결국 무작정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리고선 택시를 타고 인적이 드문 변두리 주택가를 가자고 해서 7년전 사산된 아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동씨의 눈에 김군이 보였던 겁니다. 김군을 데리고 집에까지 간 동씨는 혼인신고때 사용했던 이름으로 김군을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까지 시켰습니다. 

 동씨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 너무 압박에 시달려 잠적하려고 암자까지 알아봤다고 합니다. 7년전에 시작한 거짓말이 족쇄가 돼 스스로의 목을 조이던 50살의 평범한 한 가정주부는 이렇게 유괴범이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 김군은 건겅한 상태로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7년간 남편은 아들을 보러 한번도 가지 않았는지, 전화 통화도 한번 해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산된 아이가 사망으로 처리되지 않고 멀쩡하게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는지 제도적 허점이 낳은 비극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경찰도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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