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오전 9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경상남도 문경을 새벽 6시25분에 떠난 고속버스가 들어왔습니다. 그 고속버스에는 고등학생 2명이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터미널 인근에 있는 강남성모병원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병원에는 그들의 친구인 이 모 군이 있었습니다.
경상남도 문경에 있는 한 공업고등학교 3학년인 이군은 지난 1월 중순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이군은 염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백혈병의 특성상 조그만 염증도 낫지 않아 수술까지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고, 병원에서도 항생제를 동원했지만 쉽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이럴때 요긴한 치료방법 하나가 바로 건강한 사람들의 백혈구를 직접 공여받는 겁니다. 하지만, 공여자를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백혈구를 공여하려면 일단 병원에 직접 와서 공여가 가능하지 검사부터 받아야 합니다. 공여가 가능하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공여를 하기 전날에 백혈구 양을 늘리는 촉진제도 맞아야 하고, 그 이후에 백혈구를 걸러내는 데 걸리는 시간만 2시간이 훨씬 넘습니다. 공여 전에도 일찍와서 검사도 한번 더 거쳐야 합니다. 백혈구를 한번 주려면 이틀을 온전히 바쳐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체력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백혈병 환자 중에서 공여를 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병원관계자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군에게는 백혈구를 주는 공여자가 무려 8명이나 있습니다. 경북 문경에서 매일같이 6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내려가는 고마운 친구들이 바로 주인공들입니다. 이군의 사정을 알게된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단지 친구를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진해서 매일같이 두명씩 돌아가며 올라오고 있습니다. 같은 학교 친구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친구들이 선뜻 나서준 겁니다. 한명은 그날 백혈구를 공여하고 나머지 한 친구는 촉진제를 맞기 위해 서울과 문경을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헌혈증도 무려 500장이나 모아서 왔습니다.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도 이 친구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착한 아이들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이어갔습니다. 이군의 어머니도 아들의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고맙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만큼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반면, 백혈구를 공여하러 올라온 이군의 친구는 그냥 머쓱해 할 뿐이었습니다. 그냥 친구니까, 내가 도울 수 있는 걸 도울 뿐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친구의 눈에는 선함이 가득했습니다.
요즘 10대 하면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는 듯 합니다. 연일 10대에 관해 들리는 이야기는 동급생이나 하급생을 괴롭히고 폭행하고,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저지르는 '무서운 아이들'의 이야기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친구를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의리있고 선한 아이들도 있다는 너무나 뻔한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니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군에 대한 친구들의 릴레이 공여는 지난 목요일을 기점으로 일단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군의 친구들은 한달후에 다시 이군을 위해 릴레이 공여를 이어갈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