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공천 후폭풍으로 시끄럽다. 탈락자가 없었던 1차 공천 결과 발표 때와 달리 2차 발표에서는 현역의원 15명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또 17명은 지역구가 전략공천지역으로 분류돼 공천이 보류됐다. 전략공천지역은 통상 나선 후보들 가운데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 당에서 직접 공천하겠다는 의미로 지정하는 것인 만큼 이들 가운데 상당수도 공천 탈락이 유력하다고 봐야 한다. 특히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탈락 가능성이 높은 의원들의 상당수가 친이계 의원들이어서 계파간 갈등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재심 요청과 심사 자료 공개 요구가 잇따르자 공천위원회는 원칙에 따른 시스템 공천임을 재차 강조했다. 공천 탈락은 객관적 데이터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한 결과이며 비율상 수도권은 공정하게 하더라도 친이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특히 반발 가능성이 큰 현역의원은 공천위가 재량권을 배제하고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며 파문 확산을 경계했다.
◈ '공천의 원칙' 현역 하위 25% 컷오프
논란의 핵심인 현역의원 공천 탈락을 결정하는 가장 큰 원칙은 이른바 '하위 25% 컷오프'다. 총선 불출마자를 제외한 현역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교체지수와 경쟁력을 여론조사로 측정해 전국에서 하위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는 방식이다. 당초 교체지수, 경쟁력과 함께 의정활동과 지역구 활동도 평가에 포함시킬 계획이었지만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제외됐다.
공천심사에 원칙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천심사위원회가 활동하기도 전에 지도부가 미리 구체적인 심사 방법을 정해놓는 것은 좀처럼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 비상대책위원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여론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3차 공천결과 발표에서 탈락한 상당수 의원들도 이 컷오프가 공천배제의 근거가 됐다.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에서도 상당수 의원들이 컷오프에 걸려 탈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번 컷오프에 걸린 사람은 모두 3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교체지수와 경쟁력 조사에서 성적이 나쁜 하위 25%는 모두 단죄돼야 하는가?
◈ '원칙'에 발목잡힌 공천심사
새누리당은 야당과 접전이 예상된다며 부산·경남 지역부터 공천면접을 마쳤다. 면접결과를 바탕으로 1차 여론조사도 제일 먼저 끝냈다. 하지만 공천을 빨리 마쳐 후보들이 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던 당초 계획과 달리 공천 발표는 계속 뒤로 밀렸다. 역설적이게도 국민 여론을 반영해 도입했다던 컷오프가 오히려 공천심사의 발목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중진의원들이 무더기로 컷오프 탈락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공천위 논의 과정에서 이 중진들의 공천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측과 현실 정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컷오프에 오른 몇몇 중진들을 구제할 경우 '누군 살리고 누군 죽이고'하는 식의 편파 심사가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결국 컷오프 탈락자 전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공천위 내에선 애초에 그런 원칙은 왜 정해서 혼란을 자초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 수치화에 집착…평가 요소 지나치게 단순화
이런 혼란이 발생한 것은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 객관적 데이터에 집착한 결과다. 의도는 좋았다. 떨어진 사람들에게 "당신은 성적이 이렇게 나와 어쩔 수 없다"며 수치화된 데이터를 제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현역의원 컷오프 2차 여론조사 수치 산출 근거인 평가 요소부터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교체지수와 경쟁력은 모두 여론을 수치화한 것이다. 주민들이 얼마나 바꾸고 싶어하는지, 다른 후보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지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당선 가능성'이다. 선출직인 만큼 당선 가능성은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의 하나다. 하지만 선거가 인기투표가 아닌 한 이게 전부일 순 없다.
예를 들어보자.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역구 활동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국회 챙기고 당무 챙기다보면 지역에 머무는 시간은 적어진다. 지역주민들이 '중앙무대에서 큰 일한다"며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기와 역할에 따라 편차가 커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또 원해서 한 일이니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 정책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주요 당직을 개인적인 호불호로 정할 문제는 아니다. 능력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고 그런 사람에게는 가점이 주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 논란 없애려다 논란 키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점 때문에 당초 의정활동 부분이 평가요소로 거론됐지만 배제됐다. 또 한 발 더 나아가 하위 25%를 무조건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평가 여지를 스스로 축소시켰다. 그럼 결과적으로 컷오프 여론조사가 논란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당초 목적은 달성한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1차 여론조사 결과와 2차 컷오프 조사결과가 뒤엉키면서 논란을 가열시키기도 했다. 현역의원이 1차 여론조사에서 경쟁력 우위를 보이고도 컷오프 조사에 걸려, 자신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는 사례가 언급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1차와 2차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1차는 압축된 후보들을 대상으로, 2차 현역의원들에 한해 (이게 컷오프 여론조사다) 실시됐다. 1차 조사에서 경쟁력 우위를 보이고도 떨어진 후보는 상당수가 2차 조사에서 하위 25%에 걸려 탈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위 25%는 무조건 자르겠다고 했으니 경쟁력 조사에서 1등을 해도 자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원칙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공천된 사람이 탈락한 사람만도 못하다면 쉽게 납득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내놓을 후보도 없이 무조건 사람부터 자르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김문수, 정몽준 같은 친이계 대권주자들의 지적을 마냥 모른 척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선출직이지만 그 선거구민의 위임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양심에 따라서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해야 하는 자리다. 국회에 필요한 건 지역구만 잘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당 입장에선 붙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중요할지 몰라도 국민 입장에선 나랏일 제대로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역 대표성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지역만 대표하는 사람이 곤란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의원들 가운데는 다음 총선을 위해 도의원인지 국회의원인지 구분이 안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선 가능성만을 보는 평가 방식이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지역 여론 VS 능력·소신
"국민 성적표랄 수 있는 여론조사에서 하위 25%에 든 현역의원들은 공천에서 원천 배제한다." 솔깃한 말이다. 하지만 선거가 인기투표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바람을 타기 쉬운 수도권은 지역적 특성이 고려돼야 한다. 또 지방은 지방대로의 특성이 있다. 중앙 정치에서의 기여도도 감안돼야 한다. 국익을 고려해 지역구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한 사람이 지역 여론조사에서 나쁘게 나왔다고 자른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정말 능력과 소신을 갖춘 사람이라면 지역구를 옮기거나 비례대표 후보로 삼아서라도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보다 원론적인 면에서는 도대체 탈락의 기준을 25%로 설정한 근거가 뭔지도 불분명하다. 왜 25%인가? 필요하다면 현역의원의 25%가 아니라 100%라도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설정 기준을 알 수 없는 인위적 혹은 작위적 수치로 사람부터 자르고 보는 방식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여기에 평가 요소가 오직 당선 가능성과 직결된 교체지수·경쟁력 뿐이라면 더욱 그렇다. 새누리당이 객관화된 데이터, 시스템 공천을 표방했음에도 공천 반발을 탈락자들의 푸념으로만 치부하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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