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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전이 뚫렸다" 발칵…해킹소동 알고보니

[취재파일] "한전이 뚫렸다" 발칵…해킹소동 알고보니
우선 교통 체계를 교란시킨다. 다음 단계는 방송과 통신, 그리고 재정을 장악하는 일. 이어서 전기, 수도, 가스 등 국가 기간망의 통제 권한을 뺏는다.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4'는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이른바 '파이어 세일(Fire Sale)'의 위험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보안업체 대표를 만난 건 우연한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얘기의 주제는 전자금융과 해킹으로 흘렀다. "우연히 한국전력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우리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한전 신호가 잡힙니다. (한전 내부망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데요'라고 하더군요." 지난 해 10월 하순 어느 날이었다.

9.15 정전 사태에 대해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의한 혼란 가능성이 99.9%"라고 어느 국회의원이 주장한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정부와 한전이 '터무니없다'고 부인한 터였지만 때가 때인지라 그도 솔깃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무선망을 통해 외부에서 한전 내부망으로 침투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제보했다.

궁금해졌다. 한전의 설명은 이렇다. 청와대가 관련 제보를 한전에 이첩한 것은 11월4일이었다. 한전은 자체 파악에 들어갔다. 한전의 한 지점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어와 작업을 하고 있었다. PC와 인터넷을 사용해야 하니 그 직원들은 유무선 공유기를 사용했다. 이들은 한전에서 작업하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PC를 'kepco***' 등으로 이름을 붙여놓았다. KEPCO는 한전의 영문 이니셜이다.

이들은 한전 내부망 일부에 접속해 전력설비 수리내역, 요금 납부 내역, 단전 고객 조회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바로 그 유무선 공유기를 통해서. 그런데 무선 부분을 차단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때문에 외부에서 그 유무선 공유기를 통해 한전 용역업체 직원들의 PC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용역업체 직원들의 PC를 장악할 수 있었다면 한전 내부 업무망에도 일부 접속이 가능했을 것이다. 정전 사태 당시 한 보안업체는 '한전 내부망이 해킹돼 전력 사용량을 실제보다 부풀려 과부하처럼 보이게 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전은 여러 단계의 방화벽이 설치돼 있어 내부 업무망 해킹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 한전 내부망에 접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용역업체들이 자신들의 PC 이름을 'kepco***' 등으로 붙여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전력망이 해킹당할 가능성은? 한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전력망은 한전 직원들이 사용하는 내부 업무망과도 엄격히 분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력망은 폐쇄적 구조여서 무선으로는 접근 자체가 안 된다는 설명과 함께. 다이하드4를 떠올려보자. 영화 속의 해커들도 전력망을 장악하기 위해서 총을 쏘아대며 직접 발전소에 침투해야 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한전은 이런 사실 관계를 파악한 이후 유사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전국의 전 사업소별로 긴급 자체 점검을 실시했다. 전력망과 분리된 업무망이라 해도, 용역업체 직원들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어쨌든 공공기관의 전산망 운영과 관리에 허점이 노출됐기 때문이었으리라. 지난 해 정전 사태 직후의 분위기 속에서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면 불안감을 한층 증폭됐을 것이다.

파이어세일은 이론적으로만,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의 상황, 지금까지 알려진 기술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해킹 기술이 어느 단계, 어느 속도로 진화하는지 알 수는 없는 일. 뚫느냐 막느냐의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부와 권력이 네트워크화 될수록 그 네트워크를 뚫으려는 욕망은 커지고 기술도 발전할 것이다. 부가 집중된 금융회사의 전산망 보안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창업해서 대기업되기 점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죠. 하지만 앞으로 네이버 같은 신생 대기업이 나온다면 아마도 보안 분야의 기업이 될 것 입니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 몇몇이 보안업체 대표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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