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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절망의 땅'에 가다

후쿠시마 취재 후기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강제 대피 지역을 취재하기 위해 신칸센을 타고 후쿠시마현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해 3월 대지진 발생 직후 피해지 취재를 위해 이와키와 리쿠젠다카타, 후네바시 등을 돌아 본 지 거의 1년 만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폭설에 눈보라까지 겹쳐 한마디로 악천후의 연속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카메라 기자까지 눈 위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운전대를 대신 잡고 산길을 따라 조심조심 운전을 하는데 빌린 차량이 경차인데다 도로도 빙판길로 변해 시속 2, 30km의 거북이 걸음이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원전에서 25킬로미터쯤 떨어진 가쓰라오 마을. 눈이 발목까지 쌓인 마을에선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 집 저 집 돌아봤지만 집 현관에는 모두 커튼이 내려져 있었고, 마을 어디에서도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국도변 주유소는 입구를 막은 채 영업을 중단한 상태. 우체국도 굳게 문을 걸어 잠갔고, 우체통에는 강제 피난 구역으로 지정돼 업무를 중단한다는 알림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방사능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민 모두가 떠난 텅 빈 마을. 하지만 방사능의 위험을 실감하기엔 마을은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연간 피폭량이 20밀리시버트를 넘는 지역이고, 장소에 따라 언제든 극히 높은 수치의 방사능에 피폭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취재진은 후쿠시마 취재에 앞서 방호복을 겉 옷 안쪽에 착용하고 장갑과 마스크를 한 상태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임엔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탓인지 양말과 장갑은 흠뻑 젖었고 흩날리는 눈발에 머리까지 젖어왔습니다.

그 때 저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주인을 잃은 개 한 마리. 동물보호협회 자원봉사자들은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는 이 개를 먹이로 유인해 안전한 장소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원전 반경 20킬로미터까지로 사람의 통행이 금지된 경계구역과 반경 30킬로미터까지의 강제 대피 구역에 남아 있는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은 아직도 수천 마리. 지금까지 천여 마리가 발견돼 쉼터로 옮겨졌지만 아직도 많은 애완동물들이 버려진 채 이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 개와 고양이는 개구리나 곤충을 잡아먹으며 견뎠기 때문에 방사능 피폭뿐만 아니라 기생충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또 1년간 거의 야생화 된 상태라 언제든 사람을 공격할 위험성도 있다고 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후쿠시마 서쪽으로 차를 돌려 나오는 중간 중간에 마주친 대부분의 집들도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방사능의 위험을 피해 고향을 등 진 사람만 10만 명. 하지만 언제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후쿠시마 도심에 도착해 젖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 비닐에 싸 버리고 미리 준비해 간 것으로 갈아 신었습니다. 밤 기차로 집에 도착하자 반기며 달려오는 딸아이에게 오늘 하루만은 가까이 오지 말라며 바로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최근 들어 도쿄에서 감지되는 지진의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잠자리에서 침대가 흔들리는 경험은 이제는 익숙해 질만도 한데 당할수록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도쿄의 지하에서 직하형 지진이 발생하는 가정 하에 이뤄지는 훈련도 자주 실시됩니다. 오늘 자 석간 신문엔 도쿄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외곽으로 향하는 도로에 대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비상용품과 식량을 사전에 준비해 두라는 주변의 경고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비상시에 가족과 어디서 만날지 미리 정해두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한 번의 대지진을 겪은 사람들로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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