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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 '아리수'

[취재파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 '아리수'
제가 지금은 기자로 일하고 있지만 예전엔 수의사였습니다. 수의사 중에서도 미생물학과 병리학을 전공한 기초 의학자였습니다. 부족한 실력에도 운이 좋아, 군 복무도 국방부 '국군의학연구소'란 기관에서 연구와 검사를 담당하는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당시 여러 업무 가운데 하나가 식품테러에 대비한 식품.수질 검사였습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장병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이 오염됐는지를 검사하고 이를 막는 방안을 연구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어느 날, 모 부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을 가지고 와서 마실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통 검사를 의뢰할 때는 검사 시료를 어디서 어떻게 채취한 것인지 명시하게 돼 있는데, 전혀 그런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로 비공식적으로 검사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지휘관의 허락을 받고 검사하게 됐습니다. 결과는 부대장의 걱정(?)과 달리 매우 우수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물의 탁한 정도를 나타나는 색도나 탁도는 매우 낮게 나왔고, 세균이나 대장균 같은 미생물은 일반 정수기나 생수보다 더 깨끗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안심하고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대장은 왜 비공개 검사를 요청했을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물은 서울시가 개발한 수돗물 '아리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고 하는데 부대장은 자꾸 의심이 돼, 일부로 시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검사를 의뢰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결과는 좋게 나왔고 부대장은 장병들에게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고 자신 있게 얘기를 했습니다. 대신 운용비용이 많이 드는 정수기나 냉․온수기는 많이 없앴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무리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고 강조해도 장병들이 좀처럼 수돗물을 안 마신다는 겁니다. 더운 여름날 훈련을 힘들게 해도 가까이 있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멀리 있는 정수기나 냉․온수기 물을 마시러 간다고 했습니다. 결국 부대장은 어쩔 수 없이 치웠던 정수기와 냉․온수기를 다시 설치했습니다.

사람 인연이란 게 참 묘한 법입니다. 그렇게 만났던 '아리수'를 몇 년 뒤 제가 기자로 서울시를 출입하며 다시 만났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아리수는 어떻게 돼 있을까요? 호기심 반, 궁금증 반의 마음으로 열심히 취재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기대와 달리 '아리수'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마실 수 없는 수돗물'일 뿐이었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리수를 마신다고 답한 시민의 비율은 1.4%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2007년부터 약 5천억 원을 들여온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입니다.

그럼 시민은 왜 아리수를 마시지 않을까요?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수돗물 자체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시민 천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아리수가 생수나 정수기 물만큼 깨끗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또 소독약 냄새가 나고 맛이 없다, 오염된 상수원이나 낡은 배수관이 생각난다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심지어 수돗물도 마실 수 있냐고 반문한 경우가 열 명 가운데 한 명꼴이나 됐습니다.

결국 수돗물하면 오염된 한강이나 공장 폐수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고, 거기에다 소독약(염소) 냄새까지 나니 "깨끗하지 않은 물을 약품을 넣어서 소독했구나" 이렇게 생각해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는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서 돈을 받고 파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아니. 공짜로 그냥 줘도 안 먹는데 돈을 받고 판다고?' 저도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리수 관계자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돈 받고 팔면 제품이 검증됐다고 생각해 시민이 사먹는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쨌든 서울시는 이런 이유로 수돗물의 유료 판매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도 곧바로 벽에 부딪혔습니다. 현행 법률상 수돗물은 돈을 받고 팔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왜 통과를 안 시키는지 물어보니, 한 마디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마시는 물을 파는데 돈 쓰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오래된 배관교체부터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러자 서울시는 다시 아리수의 외국 판매를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벽에 부딪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먹지 않는 (검증되지 않은) 물은 외국에 팔 수 없도록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은 돈대로 썼는데 시민들은 외면하고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처한 것입니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돗물 음용률이 40%를 넘는 일본을 방문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역시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선입견이란 게 그만큼 무섭습니다. 서울시는 어느 물인지 모르게 이름을 가리고 가장 맛있는 물을 선택하게 하면 아리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지만, 한번 고정된 나쁜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그럴 거야'라고 넘겨 판단하는 이른바 '귀납적 추론' 때문입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각자 문제의 원인을 보는 관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안은 하나로 모였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오래된 배수관을 교체하고 지속적인 홍보로 시민의 불신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길고 지루하고 힘든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시는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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