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선에서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 후보로 출마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그가 집권 3기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푸틴 3기는 71%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한 지난 2004년은 물론 보리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돼 막 크렘린에 입성했던 2000년 때보다 오히려 상황이 좋지 않다.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3기에서 지금까지 추구했던 정책 노선을 크게 수정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커 보이지 않는다.
선거 운동 기간에 그가 한 발언이나 현지 언론에 게재한 기고문 등을 미루어 볼 때 푸틴은 2기 때의 핵심 통치 철학이었던 '주권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그대로 밀고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대내적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성보다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우위에 두는 권위주의와 대외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일방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항해 자국 이익의 관철을 망설이지 않는 강경 노선이다.
다만 국내 정치·경제 등의 분야에서 집권 1, 2기 때와는 달라진 환경을 고려하고 지난해 12월 총선 이후 분출된 시민사회의 자유화 및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는 차원에서 일정 정도의 개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5월 출범할 푸틴 3기의 정책 전망을 정치·경제·외교(안보)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본다.
◇ 정치= 푸틴 2기의 핵심적 통치 철학은 당시 크렘린행정실(대통령 행정실) 부실장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현 내각 부총리)가 확립한 '주권 민주주의'였다.
국내 정치에서 의회 권력에 대한 대통령 권한의 우위, 시민사회(언론, 비정부 단체 등 포함)의 자율성에 대한 국가 통제의 우위, 지방에 대한 중앙의 우위 등을 강조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다.
대외정치에선 러시아의 주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러시아의 내정에 대한 서방의 개입이나 훈수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주권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2000년대 중반 옛 소련권에서 불타올랐던 정권 교체 혁명인 '색깔 혁명'이 러시아로 번지는 것을 차단해야 할 긴박한 필요에서 만들어졌다.
푸틴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과 북(北) 아프리카 지역의 정권 교체 혁명 바람이 거센 지금의 상황이 옛 소련권에서 '색깔 혁명'이 불붙었던 2000년대 중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엔 권위주의적이거나 독재적 지도자들을 몰아낸 아랍권 혁명의 바람이 러시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푸틴은 그동안 의식 있는 중산층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수시로 강조해왔지만 정작 지난해 12월 총선 이후 자유주의 성향의 중산층과 정치 단체가 주도한 야권 시위에 대해선 극도의 반감을 표시했다.
푸틴은 이들을 러시아의 불안정을 꾀하는 서방의 지시와 자금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파괴적 세력이란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TV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야권 지도자들을 영국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동화 '정글북'에 나오는 원숭이들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야권 시위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원숭이같은 서방의 추종자들로 비하한 것이다.
푸틴은 또 2월 말 군 고위 지휘관들과 만난 자리에선 "우리나라에서 (아랍권에서와) 유사한 일(정권교체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우리가 스스로 주권을 지킬 필요가 있으며 아무에게도 우리의 일에 코를 들이밀도록 허용해선 안된다"며 "보안기관과 사법기관 등이 제대로 일을 해야 하며 군대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소위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수출될 수 없으며 각국의 토양 위에서 스스로 자라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발언은 푸틴이 3기에도 주권 민주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통치를 계속 펼쳐 나갈 것임을 예고한다.
민간부문이나 시민사회의 자율성보다 정부나 국가의 관리와 통제에 더 무게를 두는 통치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물론 푸틴은 지속적인 야권의 정치 제도 개혁 및 민주화 요구에 이를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1일 주요 서방 언론사 편집인들과의 면담에서 집권 이후 정치적 강경책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뭐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느냐.
오히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정치 시스템을 자유화하고 정당 설립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메드베데프가 하원에 제출한 법안은 정당 등록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등록에 필요한 당원 수를 현행 4만 명에서 500명으로 대폭 줄여 정당 창립을 쉽게하고 현재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지사 등 지방정부 수장을 지역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푸틴은 지난해 말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자신이 대통령직에 있던 2004년에 폐지한 지방정부 수장 직선제를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초 현지 일간 '코메르산트'에 게재한 '민주주의와 국가의 질' 제하의 기고문에선 국민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입법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은 사회적 안건을 의회에서 반드시 검토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자는 제안이었다.
국민의 정치 참여 기회를 늘리는 개혁을 통해 야당이 제기해온 민주화 요구들을 일정 정도 수용하겠다는 유화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안은 어디까지나 대선을 통해 선출된 자신과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지난해 말 총선을 통해 구성된 새 의회의 임기를 보장하며 기존 정치 시스템의 근간을 크게 흔들지 않는 선에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 푸틴의 소신이다.
정치 제도 개혁을 위한 개헌과 선거법 개정, 조기 총선, 푸틴 사퇴까지를 요구하는 야권의 주장과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 경제 = 경제 분야에서도 '주권 민주주의'의 원칙에 바탕한 개혁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권 민주주의의 입안자인 수르코프에 따르면 러시아의 주력 산업인 연료·에너지 부문과 정보·통신, 금융 및 방위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 분야는 러시아 자본의 배타적 관리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기간 산업에 대한 외국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제 운용에서 민간의 자율이 아닌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푸틴은 1월 말 현지 일간 '베도모스티'에 게재한 경제 관련 기고문에서 의약, 화학, 합금, 항공, 정보통신, 나노 기술, 원자력, 우주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국영 기업을 만들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한국이나 중국의 예를 들면서 경제 현대화를 위해선 초기 단계에서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뜻이었다.
집권 2기에서 에너지, 항공, 방위산업, 정보통신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국영 기업을 만들어 단기간에 낙후한 산업을 일으키려 했던 전략과 유사하다.
푸틴은 이같은 국가주도 경제개발을 통해 러시아 국내 총생산(GDP)의 4분의 1 이상을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자원의존적 경제구조를 바꾸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그러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대기업에서 국가의 비중을 줄여 나가고 주요 국영 기업들의 민영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영화가 부족한 국가 예산 확보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민간 분야의 창의성을 토대로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임을 강조했다.
경제 정책에서 국가의 통제를 줄이면서 규제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바꾸고, 행정적 통제를 자율적 책임으로 변화시키는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일반 형법의 적용을 받던 경제 범죄를 중재법원에서 처리토록 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푸틴은 특히 러시아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법제, 세제 등의 미비가 아니라 세관이나 세무서에서부터, 검찰 법원에 이르기까지 관료들의 투명성이 부족한 데 있다고 강조했다.
특정 기업인 및 기업과 결탁한 관료들의 부정부패 고리를 차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 자체와 행정부, 사법부 등이 모두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낙후한 국방, 보건, 교육 등의 공공 분야 발전과 사회간접자본 구축 등을 위한 비용 마련 방안의 하나로 사치세(특별소비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호화주택이나 고가의 고급 자동차에 사치세를 물리겠다는 것이었다.
푸틴은 이같은 개혁을 통해 국민의 전반적 월급 수준을 앞으로 8년 안에 지금의 1.7배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말 선거 운동 차원에서 친(親) 정부 정치연합체 '전(全) 러시아국민전선' 회원 및 정치학자, 선거운동 대리인 등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2020년까지 평균임금을 지금(2만4천 루블)의 1.6~1.7배 수준인 4만 루블(약 150만 원)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며 "이는 상당한 인상 폭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동안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을 유지하돼 장기적으로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기반한 시스템을 만들어 경제 현대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 푸틴의 경제 정책 구상이다.
◇ 외교·안보 = 푸틴의 크렘린 복귀로 러시아와 서방 관계엔 일정한 냉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전임자인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추진했던 미국과의 리셋(reset.관계 재설정) 정책 등 서방과의 화해 정책을 포기하고 강경 노선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방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면서 자국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외교적 '주권 민주주의' 노선이다.
푸틴은 지난달 말 현지 신문 '모스코프스키예 노보스티'에 게재한 외교정책 관련 기고문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신뢰를 저버리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 국가들의 행동의 일부 측면은 동서냉전식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푸틴은 특히 옛 소련권으로의 나토 확장과 미국과 나토가 유럽에 구축하려는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러시아 국경 바로 근처에서 이뤄지는 이같은 미국과 나토의 움직임이 러시아의 안보를 흔들고 국제적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최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아랍의 봄' 사태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나토의 목적이 이 지역 국가들에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재분할에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서방국가들이 (민간인 희생을 막고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인도주의 작전' 명목하에 무력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내정에 무리하게 개입하고 있다면서 이를 '미사일과 폭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다.
푸틴은 그러한 정책의 한 희생자로 이란을 들면서 "만일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이 이뤄진다면 그 결과는 진실로 파국적인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의 실질적 규모는 상상 조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러시아는) 누군가의 결정에 의한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과 목표에 근거해 행동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강하고 제대로 서 있을 때야 우리를 존중하고 우리의 이익을 고려한다"고 역설했다.
푸틴은 또 이에 앞서 현지 신문 로시이스카야 가제타에 실은 안보 관련 기고문에서는 "전략적 억지력(핵무기)이 1990년대의 엄혹한 시기에 러시아의 국가적 주권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줬다"며 "어떤 경우에도 전략적 억지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대와 특수부대 다른 무력 부서들이 새로운 도전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이는 러시아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 우리의 주장들이 여러 국제기구들에서 파트너들에 의해 수용되도록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푸틴은 앞서 국방력 강화를 위해 올해부터 2020년까지 23조 루블(약 870조 원)의 예산을 쏟아 붓겠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은 지난달 말 '전(全) 러시아국민전선' 회원 및 정치학자, 선거운동 대리인 등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막대한 국방 예산 투입 계획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이런 비판은 '잠재적 적'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방력은 항상 잠재적 공격자를 상정하고 있으며 이들(잠재적 공격자)은 항상 우리의 모든 실수와 잘못을 이용하려 든다"며 "이를 이해하고 우리의 군대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잠재적 적의 공격에 대비해 무리를 해서라도 국방력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연합뉴스)
푸틴 3기, 어떤 정책 펼까
2기 통치 철학 '주권 민주주의' 노선 이어갈 듯<br>권위주의적 통치·국가 주도 경제·대외 강경 노선<br>야권 및 여론 수렴 위한 일부 개혁조치는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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