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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아빠 몽골엄마, 아기의 국적은?

국적없는 아기, 누구의 잘못인가?

[취재파일] 한국아빠 몽골엄마, 아기의 국적은?

지난해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한국인과 이주민이 가정을 이룬 다문화 가정이 14만 가구를 넘어섰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며 단일 민족의 우수성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요즘은 이런 이야기 떠들고 다니면 시대에 뒤처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위에서 이주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다문화 문제는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겪는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는 뉴스가 거듭되는 상태입니다.

이번에 제가 다루는 내용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에 대해섭니다. 먼저 상식적인 문제 하나 내죠. 국내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한국인일까요? (여기서 한국인은 법적으로 한국 국적의 취득한다는 뜻으로 정합니다.) 당연히 "네" 라고 답하시겠죠. 하지만 꼭 "네"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니요"가 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왜냐고요? 다음 문제를 보시면 좀 더 고민이 될 것 같은데요. 한국인과 외국인이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낳은 아이는 한국인인가요?

저는 "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속인주의(간단히 말해서 '한국인의 아이는 어디에서 나든 한국인이다’라는 거죠.)를 채택한 나라이니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더군요. '혼인신고 전'에 낳은 아이의 경우 부모 가운데 한국인이 아버지냐 어머니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국내법의 출생신고 절차에 따르면 '아이의 어머니가 한국인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라는 규정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 아닌 경우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혼인신고 전에 낳은 아이는 그야말로 혼외 출산으로 규정됩니다. 이 경우는 어머니의 국적을 따르도록 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일 경우 아이도 한국인으로 대우 받지만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도 어머니가 외국인이고 결혼 전에 태어났다 그러면 이 아이는 무조건 어머니의 국적을 우선 따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 뒤 아버지가 '여자 00의 아이로 00의 국적을 가진 아이의 아빠는 바로 접니다' 라는 이른바 인지신고를 통해 아이를 한국인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혼외 출산의 경우 아버지가 한국인이면 이른바 인지신고("내가 저 아이의 아버지요"라고 주장하는 거죠.)를 통해서 아이가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 아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아이를 낳은 친모가 있을 텐데 어떻게 남자 혼자서 내 아이라 주장할 수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친모가 한국인이라는 확인이 없으면 한국인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게 법이 바뀐 겁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아이는 당연히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제가 만난 한 부부도 이런 상식만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했다가 큰 고생을 한 경우입니다.

한국인 청년이 몽골에서 온 아가씨와 사귀었습니다. 국경 없는 사랑이 시작된 거죠.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그래 아기도 태어났으니 가난한 형편에 결혼식은 올리지 못해도 혼인신고라도 함께 하자"라는 생각에 구청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아기의 출생신고와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함께 해도 되냐고 물었죠. 구청 직원은 "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기 아빠는 아이의 의료보험을 만들기 위해 가족증명서를 떼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기의 이름 옆에 있어야 할 주민등록번호가 빈 칸이었던 거죠. 무슨 일인가 구청을 찾아가 물어보니 아이의 출생신고에 대한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해서 그런다는 거죠. 이유는 앞에서 제가 설명한대로 혼인신고일보다 아기의 출생일이 더 먼저이니 법에 따라 아기 엄마의 몽골국적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아기 아빠가 인지신고를 해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구청은 아기의 출생자 기록을 말소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부는 '절차가 조금은 복잡해지긴 했지만 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는 생각에 아기를 몽골 국적으로 신청하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가 거부된 기록이 몽골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몽골은 한국에서 났고 한국아빠를 둔 아기를 왜 몽골까지 와서 출생신고를 하려느냐고 따졌습니다. 부부는 내용을 설명했지만 들어주지 않더랍니다. 한국에서 거부당하니까 몽골로 온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일이 이렇게 꼬이면서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부부는 몽골을 두 차례나 오가며 돈은 돈대로 썼고 가장인 아기 아빠는 아기 출생신고에 매달리느라 안정적인 직장까지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섯 달 동안 힘겨운 옥탑방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아기는 그야말로 국적 없는 신세가 되면서 아무런 정부지원도 받지 못한 채 자라야 했습니다. 부부는 넉넉치 못한 생활형편에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아기가 행여나 감기라도 걸리면 수만 원이나 될 병원비 걱정에 하루하루를 불안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부부는 구청직원이 처음부터 엄마를 따라 몽골 국적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아버지가 며칠 뒤에 인지신고하면 된다고 설명만 해줬더라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구청직원은 그저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같이해도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받아줬다고 해명합니다. 실수였다는건 인정했습니다. 아기 엄마의 겉모습만 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둘 다 한국인이면 아기 출생일이 혼인신고보다 빨라도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혼인신고와 출생신고서에는 부모의 이름을 적게 되어 있습니다. 몽골 이름을 한글로 적으면 최소 열자가 됩니다. 그런데도 한국인으로 생각해 아무런 의심 없이 신청을 받아줬다는 게 말이 되는건지…. 구청측은 실수는 있었지만 법규상 과실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의 딱한 사정을 구제해 줄 방법도 없다고 합니다.

부부는 한국 법무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역시 '법대로'였습니다. 몽골이 아기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한국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그저 법의 테두리에서는 이 가족의 사정을 봐줄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결과를 얘기하면 이 부부는 자신들의 힘만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풀었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울고불고 매달렸습니다. 아기엄마의 몽골친척까지 다 동원해서 몽골정부에 하소연을 했고 얼마 전에야 아기가 몽골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아기가 한국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그동안 이들 가족 세 사람이 겪은 고통은 누가 보상해주나요?

우리 사회가 다문화, 다문화 하면서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에게는 그 혜택이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련 법규는 여전히 다문화 가정을 이방인의 테두리에서 꺼내주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들었던 몽골 엄마의 울음 섞인 애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몽골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한국에서 한국아빠한테서 태어난 아기인데 왜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요. 한국에서 한국 아빠를 갖고 태어난 아기한테 나라에서 주는 도움을 왜 받지 못하는 거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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