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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명인만 보면 무조건 카메라를?

'기록'과 '기억'의 치열한 싸움

[취재파일] 유명인만 보면 무조건 카메라를?
어제(19일)자 중앙 선데이에 크게 실린 사진이다. 보잉(Boeing)사를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87 드림라이너를 둘러본 뒤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을 수많은 보잉사 직원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는 모습이다. 신문이 이 사진에 붙인 제목은 '오바마를 찍어라'다.

유명인사(celebrity)를 대하는 일반인의 가장 일반적인 자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유명인사의 저서나 사진, 프린트된 티셔츠, 그도 없으면 하얀 종이를 꺼내 사인(autograph)을 받는 건 디지털 기기가 문명세계를 점령한 지금은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 대신 입으로는 환호성을 지르는 한편, 다른 손으로는 주머니를 뒤적여 카메라를 꺼내 드는 모습이 이제 유명인사가 있는 곳이면 아주 흔한 광경이 되었다. 바로 위의 사진은 요즘의 일반적인 '추세'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각각 다른 각도와 높이의 수많은 액정화면에 오바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정지화면으로, 혹은 동영상으로 가감없이 기록됐을 것이다. 그 화면들은 촬영자 각각의 손끝에서 재생되고, 지인들에게 보여지고, 인터넷에 업로드되겠지. '이건 내가 찍은거야. 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하는 자부심을 태그로 달고.

그런데, 나는 저 사진을 보며 어쩐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대통령을 직접 본다는 저 흔치 않은 순간, 사람들이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는 것은 휴대폰(혹은 디지털 카메라)의 화면에 나타난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가. 저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바마는 '내가 본 모습'이 아닌, '내 카메라가 찍은 모습'이 아닌가. 유명인사와 일반인의 사이에 '기계의 눈'이 자연스럽게 개입하고, 기계의 눈에 의해 한 번 '걸러진' 피사체로서 유명인사를 대하는 모습이, 어쩐지 '직접 대면하고 눈빛을 교환하는' 고전적이고 생생한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을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그저 기우일까. 

                 


바야흐로 현대는 디지털 디바이스(digital device)의 전성시대다. 디지털 디바이스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기록'과 '기억'의 끊임없는 싸움에 직면한다. 그리고, 대개는 '완벽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에 주도권을 넘기고 만다. 스스로 불완전하므로 결국 희미해지는 '기억' 대신, 픽셀로 혹은 바이트(byte)로 증명 가능한 '기록'에 매달리는 것이다. 일단 깊이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찍어대다 보면, 사라지고야 말 '기억'을 물리적으로 보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한다.

'기록'과 '기억'의 피말리는 경계선에 섰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오늘 신문에 실렸다. 우연히도 같은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현장에서] 비디오 찍다 퇴장당한 30대 … 공연장에선 그냥 즐기세요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218/7409218.html?ctg=


미국 록밴드 에반에센스(Evanesence)의 내한 공연장을 찾은 30대 남성이, 공연 전 과정을 비디오카메라로 찍다가 결국 주최측에 의해 퇴장당했다는 내용이다. 공연 주최측은 개인적인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늘 도사리고 있음을 감안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금지/허용 여부를 떠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연을 자기의 눈으로 보고 느끼지 못한 채 화면 찍기에만 열중한다면, 직접 공연을 보는 감동은 극히 적지 않을까. 나중에 찍은 화면을 제아무리 집에서 돌려 본들, 애초에 얻지 못했던 감동을 뒤늦게라도 얻을 수 있을까.



다시 오마마 얘기를 해 보자. 그는 태블릿 PC의 화면에 사인을 한 최초의 대통령으로도 기록돼 있다. 2010년 10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이 시애틀의 워싱턴대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환호하면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사이에,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패드를 내미는 남자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남자의 아이패드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다. "Mr. President, sign my iPad.(대통령님, 제 아이패드에 사인해 주세요.)"

뜻밖의 '아이패드 사인 요청'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흔쾌히 이 남자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최초로 아이패드에 대통령의 사인을 받은 이 남자는 실버스타 캔 4세라고,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이름까지 기록에 남겼다. 만약에 그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카메라를 꺼내들고, LCD 화면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찍어댔다면, 과연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내가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을까. 캔 4세는 '기록'과 '기억'의 사이에서 자기의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고, 덤으로 유명세까지 타게 됐다. 어쩌면 그는 '기록'과 '기억'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훌륭한 사례자로 기억될 것 같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자기에게 아이패드를 내밀며 사인해달라고 한 이 남자를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다. 셀러브리티는, 바로 이렇게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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