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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집집마다 암 환자…" 보령 '암 마을'의 비극

[취재파일] "집집마다 암 환자…" 보령 '암 마을'의 비극
오늘은 충남 보령의 한 마을에서 생긴 일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충남 보령 갓배마을과 삼현리. 이 두 마을은 근처에 위치한 군 사격장으로 매스컴을 많이 탔죠. 68년부터 미군사격장으로 사용되다가 70년대 후반 우리 군 사격장으로 바뀐 곳이죠. 군 사격으로 바다나 개펄 속에 방치된 탄피가 보도된 적 있고, 미군이 버린 걸로 추정되는 기름 오염으로 암 환자가 13명 발생했다는 보도도 있었지요.

3년 전 탄피 방치 실태는 마침 제가 보도했었고, 이후 군이 매년 탄피 수거 작업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후 어떻게 됐는지 종종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며칠 전 당시 보도로 알게 된 마을 주민 한 분이 제보를 주셨습니다. "3년 전에도 암 환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수십 명에 이를 정도로 겉잡을 수 없이 많아져 암으로 사망한 주민들에 대한 추모제를 열 것"이라고.

후속보도가 가능하겠다 싶어 두 마을을 찾아갔는데요, '암 마을'이라는 오명을 붙여도 될 정도로 실제로 암에 걸린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둘러보니 암이 발병한 집보다 암 환자가 없는 집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작성한 암 환자 명단에 따르면, 갓배마을의 경우 지난 10년간 21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29명이나 암에 걸렸고, 이 중 18명이 숨졌습니다. 삼현리에서도 33명이 암에 걸렸고 28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마을 합쳐서 무려 62명이 암에 걸린 겁니다. 20여년 전부터 세면 암 환자는 100명을 웃돈다는 게 주민들 얘기인데요.

                       


이렇게 암환자가 많다보니 당연히 마을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노인부터 젊은 사람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암에 걸려 주민들은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갓배마을에서 찾아간 한  암환자의 경우 이제 갓 22살 청년이었습니다. 3년 전 고3때 백혈병에 걸렸는데, 암 가족력도 없고, 평소 건강하게 운동도 많이 했다고 해서 더 이상했습니다.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청년은 다행히 백혈병은 거의 완치됐다고 했습니다.

삼현리에서 찾아간 한 암환자 집은 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더군요. 40대 가장이 폐암에 걸려 재작년에 숨졌고, 이후 가족들이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마을을 떠나 집이 텅텅 비어버린 겁니다. 취재진이 찾은 빈 집은 이미 문이 다 떨어져나갔고, 곳곳이 썩어 흉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피해다닌다고 하더군요. 이 집 말고도 암 환자 유족들이 살고 있는 다른 집들도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고인이 된 가족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두 마을을 황량하게 만든 걸까요? 3년 전부터 암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기름으로 인한 지하수 오염은 해당 우물을 폐쇄하면서 추가 피해는 막아놓은 상태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또다른 원인으로 사격장에서 나온 탄피의 중금속을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결과 마을 앞 갯벌의 조개에서는 발암물질인 카드뮴이 기준치의 3배를 초과해 검출됐고, 또다른 조사에서도 역시 발암물질이면서 화약물질인 RDX가 검출됐습니다.

관할 지자체인 보령 시청측은 다른 해안가 어패류에서도 비슷한 카드뮴이 나온다며, 사격장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는데요, 카드뮴과 사격장의 연관성이야 그렇다치더라도, 화약물질 RDX가 나온 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뉴스 보도가 나간 직후 문제의 두 마을 근처 다른 마을에서도 비슷한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역시 군부대 사격장 근처에 사는데, 백혈병 등 암에 걸렸다는 내용들인데요, 이쯤 됐으면 암 발병에 대한 당국의 제대로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인구 10만 명 당 300~400명 정도 암이 발병하기 마련인데, 21가구와 2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암 환자가 나오는 건 분명 정상적인 수치는 아닐 겁니다. 암 발병이 사격장과 연관이 있든 없든 이를 속시원하게 입증할만한 당국의 조속한 조사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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