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기대 없이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던 영화, 다들 한 두 개씩은 있으실 겁니다. 저는 학생 때 친구와 시간 때우려고 들어간 극장에서 봤던 '다이하드'가 그랬고, 최근에는 '테이큰'이 또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테이큰은 볼 때는 재미가 있었지만, 보고 나서는 '파리는 공항에서도 인신매매를 당할 수 있는 곳인가'하는 꺼림칙한 생각이 가장 크게 남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꺼냈냐하면, 영화 '아저씨'도 좀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이죠. 원빈 씨가 머리 깎는 장면은 멋있었고 액션도 마음에 쏙 들었지만, 내용만은 '진짜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건가?' 하는 끔찍한 생각이 머리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같은 사람이 적지 않았나 봅니다. 실제로 이 '아저씨'와 비슷한 내용의 '인신매매 괴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건데요. 큰 줄거리는 할머니가 짐을 들어달라면서 승합차 쪽으로 유인하면 그 안에서 남자들이 뛰어나와 납치해 간다는 겁니다. 쓰는 사람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내용과 장소를 조금씩 달리 쓰는데, '어, 이 사람 말하는 곳 나도 알아'하는 생각이 들면서 상당히 그럴싸해 보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괴담에 가장 크게 시달린 곳은 작년 말, 전남 순천시였습니다. 인신매매로 여고생 3명이 납치됐고, 그 중 한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경찰이 그런 사실이 없고 누군가의 장난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사실인데도 여수 엑스포 때문에 쉬쉬한다"는 둥 별 소문이 다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이달 들어서 이 괴담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요. 경남 진주시에서는 '순천에서 활약하던 인신매매범들이 이번에 진주로 넘어왔다'는 괴담이 퍼졌습니다. 구체적인 지명까지 읊어가며 '초록색 승합차'를 조심해라, 이미 다섯 명이 납치됐다 등등 사람을 거쳐갈 때마다 살도 붙어갔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납치를 당할 뻔 했다며 남자라고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 경험담까지 올라왔습니다.
경찰이 수사를 해보니 역시 중고등학생들이었는데요. 장난이었고, 이렇게 파장이 커질 줄 몰랐답니다. 저도 한 학생과 통화를 해보니 자신도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괴담 놀이'는 부산, 대구, 대전, 서울, 인천까지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지난 주 내내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죠. 인터넷 검색어 1위를 도시별로 번갈아가며 차지했고, 경찰도 사실이 아니라는 공지를 차례로 인터넷에 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이 학생들을 처벌하면 괴담이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 시작은 장난이었지만 퍼져나가는 것은 진심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퍼트린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진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조심하라고, 혹은 경찰이 수사를 빨리 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급한 마음에 순식간에 글을 옮긴 것입니다. 사람들의 불안과 불신을 없애지 못하면 괴담을 장난 삼아 퍼트려 보려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이란 이야기죠.
전문가 2명을 만났는데, 이렇게 진단하더군요. 큰 정치적 스캔들부터 작은 일반 사건사고까지, 수사기관이 불편부당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결국은 진실은 가려진다는 믿음이 국민들 사이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이죠. 청탁이나 기타 이유로 수사를 안 한다거나, 혹은 하고도 속인다거나 하는 일이 상당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인신매매 괴담'까지도 실제로 진실은 따로 있다고까지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합니다. 한 분은 언론도 잘 한 것 없다, 이런 불신의 문제를 짚어 지적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으셔서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불신과 불안은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남습니다. 작은 괴담에도 흔들리고, 고통받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선적으로 책임 있는 기관과 사람들이 있는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이를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는 저희 같은 언론이 또 감시하고 지적해야 하겠고요. 그래야만 괴담이 나오더라도 '또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왔군'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회적 안정이 찾아온다는 건데요. 작은 괴담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너무 큰 담론이 된 것 같긴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아서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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