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덜 패션적이면 어때? 유튜브가 있는데…"

수영복 모델 케이트 업튼 신드롬이 시사하는 것

이번 주 뉴욕은 온통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여러 마리의 개들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남자'는 뉴욕 닉스 농구팀의 포인트 가드 제레미 린입니다. 린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글을 쓰겠습니다. '개들'은,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어제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도그(Dog)쇼' 출전 선수들이고요. '한 여자'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지의 수영복 에디션 표지 모델로 기용된 케이트 업튼(Kate Upton,19)양입니다.

케이트 업튼의 표지 사진이 공개되면서, 뉴욕의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크게 술렁였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여성의 육체적 매력에 대해 여자들도 훨씬 더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케이트 업튼은 TV의 인기 아침 토크쇼에 등장하는가 하면, 뉴욕타임즈의 1면과 3면에도 그녀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저는 이 점에 눈길이 갔습니다.

뉴욕타임즈의 3면은 항상 통면 기사입니다.1면에 실린 기사 중, 심층으로 다룰 만한 것을 하나 골라서 사진과 함께 길게 싣습니다. 뉴욕타임즈의 모토는 "인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입니다. 다시 말해, 선정적인 단발성 뉴스는 웬만하면 싣지 않습니다. 스캔들성 뉴스라도 이런저런 사회적 의미를 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만 지면에 다룹니다. 그런 뉴욕타임즈가 이 정도 크게 썼다? 궁금해서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에디션의 표지는 톱 모델에게 돌아가는 영예입니다. 그런데 케이트 업튼은 일반적인 톱 모델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과정은, 달라진 미디어 지형과 그에 따른 업계의 변화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톱 클래스 모델들은 십대 초 중반부터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돼, 깡마른 몸매를 갈고 닦으며 워킹연습을 하며 패션쇼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지요. 모델보다 '옷'을 우선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패션 무대에서 톱이 되면, 그 다음엔 화장품 등의 분야로 진출하며 돈을 벌고, 그러면서 유명해지면 TV쇼 등의 분야로 진출하며 '유명인(celebrity)'이 됩니다.

케이트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지난 해 4월, LA 클리퍼스 농구팀 경기를 보러가서,' 두기(dougie)'라는 춤을 신나게 추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유튜브에서 Kate Upton Dougie로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로 가셔도 됩니다) http://youtu.be/FcJScBLIEX4

조회수가 3백만 건을 넘은 이 동영상은, 데이비드 커닝햄(David Cunningham)이라는 노련한 스카우트의 눈에 띄었습니다. '끼가 있다'고 직감한 커닝햄은 케이트 업튼을 IMG Models의 거물 에이전트인 이반 바트(Ivan Bart)에게 소개합니다. IMG에 소속되면서 케이트는 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15살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해, 홈쇼핑 카탈로그 등의 광고 일을 해 왔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 건  IMG와 계약한 이후의 일입니다.)

이반 바트가 케이트 업튼을 처음 보고 느꼈던 인상을,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케이트가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모든 에이전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지요. 그녀는 그다지 패션적이지 않았습니다.(She wasn't 'fashion' enough.)"

패션쇼 무대를 주름잡는 모델들의 로봇같은 외모와 가녀린 선과 달리, 케이트는 지나치게 풍만했던 겁니다. 패션 모델로서의 케이트 업튼을 낮게 평가하는 전문가로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의 캐스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션 전문지 편집장 소피아 네오피투(Sophia Neophitou)를 들 수 있습니다.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녀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절대 케이트를 쓰지 않을 겁니다. (케이트가 카탈로그 사진에 모델로 나온 적은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런웨이 쇼인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의 모델로 서기에는 너무 노골적(too obvious)이예요. 타블로이드지 중간 화보에 나오는 싸구려 모델 같잖아요. 머리도 너무 금발이고. 축구선수 부인 하면 딱이예요. 돈 있는 부자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자같은 인상이예요."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노골적인 혹평이죠. 이런 인식이 패션계에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여러 패션 전문지에도 점차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유튜브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각인시키며 '스타'가 되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즈의 진단입니다. 패션계도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전혀 무관할 수 없는데, 입소문을 형성하는 인터넷의 힘이 그만큼 커져 있다는 것이죠.

케이트를 패션 모델로서 높게 평가하는 견해중에는, '마릴린 먼로 등이 표현했던 1950년대 '멍청한 금발미녀'를 연상시키지만 전혀 멍청하지 않아 보인다', '매우 밝고, 자신감 넘치고, 자신의 장점을 쿨하게 활용할 줄 안다'는 것 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평가에 대해, 케이트 업튼 본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패션계는 오랫 동안 유명 연예인들을 쫓아다녀 왔어요. 잡지 표지도 모델 대신, 다른 분야 유명인들이 차지해 왔죠. 아무도 모델을 원지 않았어요. 그러면, 모델이 유명인사가 되면 되지 않겠어요? 원래부터 팬이 있으면 어떨까요? 소셜미디어는 모델에게 '인격(personality)'을 부여해 주죠. 그런 게 있어야, 요즘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어요."

어린 나이와 일천한 경험답지 않은 이런 인식은, 그녀 스스로 관찰해 터득한 것입니다. 브라질 출신의 수퍼모델 지젤 번천이 지금은 억만장자 비즈니스 우먼이지만,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로 천사 날개를 달고 나오고, 미식축구 수퍼스타 톰 브래디(Tom Brady)의 부인이 되어 대중의 머릿 속에 각인되기 전에는, 옷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모델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지젤 번천도 유명해지기 전에는, 몸매가 너무 굴곡지고 코도 길어서, 하이 패션의 모델을 하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지적도 따라다녔었다고 하네요.
 
                         
지젤 번천이 등장한 한 잡지 표지.2009.

(위 사진은 지젤 번천)

19세의 이 당찬 아가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고급 패션에는 적합치 않다(I coudn't be fashion), 그저 풍만한 몸매나 드러내는 구식 모델이고, 비키니 모델밖엔 안 될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는 수퍼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왜냐?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얘기할 게 있잖아요."

케이트 업튼이 지적한 '모델들의 고민'은 우리나라 방송가에서 아나운서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 보입니다. 케이트 본인이 스타가 된 과정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얼짱 출신 연예인'과도 유사한 면이 있네요. 과연 패션 모델로서의 자질을 십분 발휘해 나오미 캠벨이나 지젤 번천 같은 레벨의 수퍼모델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