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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거래소 횡령공시 1년 침묵 이유는

한화 "업무상 착오", 거래소 "횡령금액 파악안돼"

한화·거래소 횡령공시 1년 침묵 이유는
한화가 횡령·배임 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사건의 정확한 경위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한화와 한국거래소가 진실을 은폐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한화 주식의 거래정지를 해제한 거래소의 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는 동안 1년 전 한화가 횡령·배임 공시 의무를 위반하고 거래소가 이를 묵인한 정황은 묻히고 있다.

◇한화·거래소, 왜 1년이나 침묵했나

한화가 그룹 경영진의 횡령·배임 공시를 1년이나 미룬 정황은 하나의 '미스터리'에 가깝다.

12일 한화와 거래소의 해명을 종합하면 이번 사건의 발단은 작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월30일 서울서부지검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횡령, 배임, 주가조작 등의 혐의를 적용하고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연합뉴스 기사에는 횡령·배임 금액이 3천200여억 원으로 명시됐다.

이는 한화 자본금의 2.5%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로, 공시 의무 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화는 이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다. 회사 측은 열흘쯤 지난 2월10일 검찰의 기소장을 입수하고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한화는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당시 업무상 착오로 공시를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만 밝혔다.

한화가 명백히 공시 의무를 위반했는데도 거래소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당시 언론 보도만 봐서는 김 회장 등에게 적용된 혐의만 알 수 있었고 횡령·배임 금액은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횡령·배임 금액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매체에 따라 금액에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3천억∼4천억 원이었다. 한화 자본금 2조3천억원의 약 15%나 되는 액수다.

거래소가 한화의 공시 의무 위반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을 의혹을 제기하게 하는 대목이다.

거래소는 작년 4월 횡령·배임 공시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사유가 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한 뒤에도 한화에 공시 위반 사실을 환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지난 2일 검찰이 김 회장에 대해 징역 9년과 벌금 1천500억 원을 구형하면서 깨졌다.

사건이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상황에서 거래소는 금요일인 3일 한화 측에 공시 의무 위반 사실을 전달하고 한화가 1년 전 검찰로부터 받은 기소장을 요청했다.

한화는 이날 오후 6시46분에야 횡령·배임 공시를 냈고 거래소는 한화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인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한화 주식의 거래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거래소는 휴일인 5일 긴급회의를 열어 한화가 제출한 개선 방안을 근거로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주식 거래정지도 해제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는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한화의 비중을 감안했을 때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진상 규명하고 공시제도 손질해야

한화가 상장폐지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하자 노동·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사무금융노조와 경제개혁연대는 거래소의 결정은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재벌 계열사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반발이 거래소의 지난 5일 결정에 집중되는 동안 한화가 1년 동안이나 횡령·배임 공시를 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정확한 경위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반대 여론에 정면 대응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래소의 공시 관련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성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화가 횡령·배임 공시를 1년이나 지연하도록 방치한 거래소의 허술한 공시관리체계를 문제삼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차적으로는 한화의 공시 규정 위반이 문제이지만 거래소는 한화에 아무런 주의도 주지 않음으로써 공시관리체계의 허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거래소가 한화 주식의 거래정지를 전격 해제한 것은 투자자 보호와는 별개로 거래 공정성 차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거래소의 존재 목적은 투자자들의 공정한 거래를 보장하는 것이지 특정 기업을 보호하는 데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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