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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라의 수치'법 통과…뻔뻔한 의원들

[취재파일] '나라의 수치'법 통과…뻔뻔한 의원들

한 달 전쯤이었다. 금융위원회의 한 간부는 사석에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만약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나라의 수치"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통과될 가능성은 그리 높게 보지 않는 눈치였다. 말도 안 되는 법안이기 때문에.

2월 9일 국회 정무위원회. '나라의 수치'라는 그 법안이 통과됐다. "부분 예금 보장제도의 취지라든지, 예금자와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 문제라든지...채권자 평등 원칙, 자기투자 책임 원칙 등 여러 가지 금융시장의 기본 질서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 법안의 부적절성을 이렇게 강조했지만 허태열 국회 정무위원장은 귀 담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정부측의 반대 입장은 수도 없이 들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이 모든 사항을 종합해서 이 법안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이 법안은 2008년 9월 이후 문을 닫은 18개 저축은행의 5,000만 원 초과 예금과 불완전 판매된 후순위채 투자금의 55% 정도를 보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대상자는 8만 2,391명. 보상 재원은 주로 예금보험기금의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나온다. 총액은 약 1,000억 원.

이 법안이 말도 안 되는 이유.

우선 주요 보상 재원인 예금보험기금은 민간기금이다. 저축은행이 아니라 은행과 보험회사의 고객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낸 돈이다. 특정 지역의 일부 저축은행 예금자들을 위해 불특정 다수가 낸 돈을 강제로 쓰는 건 사유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위헌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둘째, 약속 위반이다. 금융회사에 맡긴 돈을 5,000만원까지만 보호한다는 부분 예금보장 제도는 사회적 약속이다. 한 번 약속이 깨지면 부분 예금보장 제도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더구나 원래 고위험, 고수익 상품인 후순위채는 IMF 외환위기 당시 은행이 줄도산했을 때도 구제해 주지 않았다.

셋째, '떼 쓰면 돈 준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특정 지역, 그리고 저축은행이라는 특정 권역의 이해 당사자를 위해 그것도 소급해서 돈을 주는 최악의 선례를 만들었다. 앞으로 저축은행이나 다른 금융회사들이 구조조정될 때마다 피해자들은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어떤 명분으로 거부할 것인가?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은 말 그대로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금융권 공동으로 갹출한 돈이다. '구조조정 비용'으로 써야지 '보상비용'으로 쓸 수는 없는 돈이다.

                     

형평성 문제는 어떤가? 2008년 9월 이전에 영업정지 당한 저축은행, 그리고 다른 금융권역의 피해자들은 왜 보상받을 수 없는가?

이것이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부산 지역 민심 달래기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여야가 한통속이 됐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이런 게 바로 전형적인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마저 통과된다면 앞으로 예금자들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따지지 않고 높은 금리 주는 곳만 쫓아다닐 것이다. 왜? 어차피 나랏돈으로 보상해 주니까. 금융회사들은 고위험, 고수익 사업만 찾아다닐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금융회사들이 부실의 늪에 빠질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당국은 부실 금융회사의 구조조정을 늦추려 할 것이다. 왜? 계속 돈으로 막을 수만은 없으니까. 피해는 고스란히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무위 의원들이 과연 일말의 양심이나마 갖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논평했다. 아주 점잖은 논평에 속한다. "표 얻기 위해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것은 강도짓 아닌가?"라는 평가에 비하면. 16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 처리에서 반드시 부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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