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신종꺾기'로 중소기업 비튼 대형 은행들

[취재파일] '신종꺾기'로 중소기업 비튼 대형 은행들

취재를 하다가 보면 실체와 통계는 뒷받침되고, 누구나 아는 만연된 일인데도 딱히 그 사실을 말해 주는 당사자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번 신종 꺾기 취재가 그랬습니다. 최근 5년동안 금감원이 은행들의 꺾기 영업을 적발해 제재한 내역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문건은 입수했지만,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대표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전화로는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지만, 한사코 직접 만나서 취재에 응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주신 중소기업 대표가 있어서 취재를 하게 됐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대출을 미끼로 구속성 계약을 맺는 이른바 꺾기가 수법은 교묘해지고, 대상은 예금, 적금 뿐 아니라 보험, 펀드, 화재보험, 퇴직연금 등으로 확장된 상태였습니다. 물론 그동안 계속된 당국의 단속과 감사 등으로 표현 방식은 완곡해 졌지만, 갑을 관계에서는 표현 방식보다는 뭘 요구하느냐가 부담 정도를 좌우하는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본질은 그대로였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중소기업 사장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대출심사를 해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데 제조업의 경우 주로 담보가 있는 대출이어서 사실 은행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용대출보다는 위험이 크지는 않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대출심사가 끝나면 적금과 보험 가입을 권합니다. 화재보험의 경우 아예 보험사까지 지정해 놓고 가입을 권유합니다. 감독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자녀나 부인 이름으로 가입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금융감독당국이 대출이 이뤄진 시점에서 1개월 전후에 적금 등에 가입 했는지를 조사하기 때문에 미리 1개월 전에 가입을 시키거나 아니면 대출이 이뤄질 때 미리 약속한 월 보험료와 적금액수를 빼고 돈을 주고 서류도 받아놓은 뒤 은행 직원이 1개월 지나면 가입시키는 일까지 있는 실정입니다. 액수는 보통 5억 정도 대출을 받으면 적금 월 300만 원, 보험 월 150만 원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권유를 그냥 거절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개인들처럼 대출을 연 단위로 만기 연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계좌를 몇 개 만들어서 3~4개월 단위로 은행을 찾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상환연장이나 추가 대출을 생각하면 '을'에게는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권유'입니다.

그런데 취재에 응한 중소기업 대표가 더 황당해 하는 것은 사실 이렇게 가입한 다음날 은행 본점에서 전화를 걸어와 "혹시 직원 권유로 가입하셨냐?" 고 확인전화를 할 때라고 합니다. 아쉬운 입장 때문에 꺾기 영업을 당한 것도 화나는데 마치 놀리는 것 같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전화에 솔직히 말할 수 있는 분들이 없으니 자의로 가입했다고 답할 것이고, 은행 측은 이 확인전화를 나중에 꺾기 영업이 아니었다는 증거로 제시하게 됩니다.

                



은행들이 최근 적금 보다 보험, 펀드, 퇴직연금에 '꺾기' 영업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높은 수수료 때문입니다. 보험을 팔 때면 은행 지점은 보험대리점과 같은 신분이고 따라서 계약을 성사시키면 바로 다음달에 월 보험료의 6배 가까운 돈이 수당으로 입금됩니다. 펀드의 경우 가입한 사람이 원금 손실이 나든 그렇지 않든 매달 꼬박꼬박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품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건 장기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은행 지점 입장에서야 보험사로부터 수당을 받아 수수료 수익과 실적을 올려서 좋겠지만, 원치도 않고 필요도 없는 보험에 가입한 중소기업 사장은 자금 사정이 어려워 질 때나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 할 때 보험 가입을 요구하게 되면 기존 보험을 위약금을 내고 해지해서 손해를 봐야 합니다. 그나마 과거 꺾기 영업의 대표 상품이던 적금은 중도해지 해도 이자 손해만 보면 되지만 이런 상품들은 다릅니다.

참고로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수수료 수익은 5조 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1년 전보다 11%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지난해 계좌이체나 수표 취급 관련 수수료를 낮추면서 그 부분 수익은 줄었지만 보험,펀드 판매 등으로 올린 수수료가 그만큼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5년 동안 금감원에 꺾기 영업이 적발돼 제재가 내려진 은행들을 보면 국내외 은행을 가리지 않고 몸집이 큰 은행이 많습니다. (아래 표 참조/2011년 금감원 제재 내역) 특히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단속을 강화하면서 첫 대상이 된 업계 1위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적발 건수만 600건에 135억 원이나 됐습니다. 한국 SC은행(구 SC제일은행)은 73건에 11억 9천만 원으로 지난해 외국계 은행 가운데 적발 건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여기에 있는 제재 내역은 꺾기 영업이 적발돼 제재가 확정된 건수인데 같은 방식으로 영업하다가 현재 제재 조치 확정을 앞두고 있는 신한, 한국씨티은행, 기업은행, 농협, 수협, 부산은행 등 8개 은행도 각각 100건 이상씩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법이 교묘해진 상황에서도 그만큼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소기업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이런 꺾기 영업을 줄이려면 '일벌백계' 위주의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피해를 입었지만 사업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적극 나서기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 피해센터 같은 것을 만들어 봐야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은행 자율에 맡겨두기엔 실적 경쟁에 내몰린 각 지점의 이해관계 때문에 감독당국의 '엄포'와 상대적으로 낮은 징계 수준 정도로는 뿌리깊은 관행을 없앨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