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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돈앞에 장사 없다…?

현실에 굴복한 오바마

[취재파일] 돈앞에 장사 없다…?

이 곳 미국 현지 시각으로 월요일 저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캠프가 발표한 게 있습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이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바마 재선측도 앞으로 슈퍼팩(슈퍼정치행동위원회,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에게 문을 열기로 했다."는 발표에 미국 정치부 기자들은 절로 바빠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슈퍼팩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선캠프의 짐 메시나 국장은 "공화당 후보들이 무제한으로 돈을 쓰는 반면 우리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고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슈퍼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슈퍼팩은 기업이나 노조는 물론 개인으로부터 제한없이 돈을 모을 수 있는 정치조직입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특정 후보를 위한 광고나 선거운동에 쓸 수 있습니다. 단, 해당 후보측과 직접적으로 협조할 수는 없고 독립적으로 해야 합니다. 슈퍼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2년 전에 있었던 두 개의 판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연방정부는 기업이나 노조가 정치와 관련된 비용을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어 미국 연방항소법원도 "슈퍼팩에 기부하는 돈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판결을 덧붙였습니다.  기업이나 노조가 특정 후보를 편드는 선거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1947년에 만들어진 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1947년법은 기업이나 노조가 특정 정치쟁점이나 이슈에 대해서는 찬반을 밝힐 수 있게 했지만 직접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는 못하도록 했었습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기업과 노조를 비롯한 이익단체들이 직접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셈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라디오와 인터넷 주례 연설을 통해 "이 판결은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일이며 공공의 이익을 심각하게 해치게 될 것이다. 특정한 이익 집단의 돈이 미국의 민주주의에 무제한으로 들어오도록 한 것은 실로 무책임한 일이다. 이제 각 이익 집단의 로비스트들은 자신들의 뜻에 맞는 표결을 하는 의원들에게는 돈을 선물하고,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에게는 벌을 줄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됐다."고 원색적으로 연방 대법원을 비난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돈에 휘둘리게 됐다는 오바마의 분노는 많은 미국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2년이나 흐른 지난 달 occupy DC 시위대가 연방 대법원앞에서 '대법원을 점령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오바마의 분노속에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어느 쪽보다 친기업적인 정책을 펴온 공화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바로 현실이 되어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의 민주당은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공화당에 뺏겼습니다. 월가의 초대형 은행과 대형 석유회사,미국총기협회처럼 돈을 갖고 있는 세력이 모두 공화당 편을 들면서 2010년에만 공화당 지지성향의 슈퍼팩은 대략 2억 달러의 돈을 쓴 반면 민주당 지지성향의 단체들은 9천8백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돈의 부족이 선거 패배라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죠.

2010년 연방 대법원 판결 전에도 팩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팩의 경우 선거때마다 각 후보에게 5천달러 이상을 줄 수 없었고, 매년 특정 정당에 1만 5천달러 이상 줄 수 없도록 돼있었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팩에 1년에  5천 달러 이상 줄 수도 없었습니다. 기업이 PAC에 기부하려면 기업이 아니라 임직원 명의로 해야 했고요. 그런데 슈퍼팩은 말 그대로 '슈퍼'입니다.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직접 액수 제한 없이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측과 별개로 운영돼야 한다는 단서조항만 준수한다면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 활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달부터 시작된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 역시 슈퍼팩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롬니를 지지하는 '미래를 복구하라(Restore Our Future)'와 깅리치를 후원하는 '미래 쟁취(Winning Our Future)' 두 슈퍼팩이 돈을 펑펑 써가며 광고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각 주를 돌아가며 예비선거를 하는 과정이 계속 중계되면서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고,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계속 모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의 전략가인 칼 로브와 연계된 두 개의 슈퍼팩 (American Crossroads와 Crossroads GPS)가 지난 해에만 5천1백만 달러를 모았다고 합니다. 미트롬니 슈퍼팩은 3천만 달러를 모은 반면 민주당 지지성향의 Priorities USA Action은 겨우 6백70만 달러에 그쳤다고 합니다. 바로 이 상황을 오바마 재선캠프로서는 더 이상 모른 체하고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쏟아질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앞으로 슈퍼팩에 문을 열기로 한 거죠.

당연히 오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재선캠프의 발표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거기에 대한 카니 대변인의 말 역시 재선캠프측 발표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재선운동이 공화당 후보들과 다른 규칙에서 진행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의 선거계좌에 로비스트와 팩의 돈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은 기다렸다는 듯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오바마가 또 다시 약속을 깨뜨리고 자신의 원칙을 뒤집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비난에 오바마의 정치적 동지도 가세했습니다.2002년 액수에 제한이 없고 규제를 받지 않는 정당 기부금(소프트 머니-일종의 정당활동비를 말합니다. 하드 머니는 후보 개인에게 주는 돈을 의미하고요)를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매케인-페인골드법을 발의했던 페인골드 전 상원의원은 "오바마의 이번 결정은 악마와 함께 춤을 추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오바마 캠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대는 총을 들고 싸우는 판에 칼을 들고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거죠. 또 민주당과 오바마를 지지하는 돈줄들이 당장 슈퍼팩을 결성해서 자금 모으기에 나설 지도 불투명합니다. 대표적인 민주당 지지자인 자본가 조지 소로스는 현재 유럽위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앞으로 슈퍼팩을 결성할 지 불투명하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민주당 지지조직인 Priorities USA Action을 이끌고 있는 빌 버튼은 "오바마 캠프의 발표 이후 웹사이트와 전화로 문의가 많이 오기는 하지만 이번 결정이 성공할 지 여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미국의 꿈과 담대한 희망, 올바른 변화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해온 오바마로서는 선거라는 현실앞에서 자신의 원칙을 포기했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 미국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막대한 돈이 쏟아부어지는 전형적인 금권선거가 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4년전 대선때 선거자금이 55억 달러정도였다고 하는데 올해는 70~80억 달러 정도는 쓰일 거라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8~9조 원이나 됩니다. 도저히 가늠이 되지를 않는군요.참고로 우리 대선의 공식 선거비용은 470억 원입니다. 후보가 서너명 된다고 치면 1천5백억 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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